사랑?그것은 전쟁
Philadelphia Story, 1940년감독 조지 쿠커 출연 캐서린 헵번 EBS 5월11일(일) 낮 2시
“캐서린 헵번은 대중의 동정심을 사는 역을 거의 맡지 않았다. 초기 출연작에서 그녀가 맡은 역은 유복한 가정의 딸이자 오만한 인물이다. 그런 역을 캐서린 헵번이 연기했으니 정나미 떨어질 법하다. 그러나 그녀는 우아하기 그지없었다.”시오노 나나미는 배우 캐서린 헵번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이 문장은 과장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조지 쿠커 감독조차도 고집불통 캐서린 헵번을 못마땅해했다는 후문이다. <필라델피아 스토리>는 캐서린 헵번의 전형적 페르소나를 담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했으며 미모와 오만함을 겸비한 여성을 연기하고 있는 것. 또한 영화는 할리우드 대중영화에 각인된 성(性) 대결의 흔적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 흥미롭다.
사교계 명사인 덱스터 헤이븐은 아내 트레이시와 헤어진다. 시간이 흐르고, 트레이시는 조지라는 남자와 재혼하려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늘 으르렁대는 사이 같지만 덱스터는 여전히 트레이시를 사랑한다. 뭔가 계획을 품은 덱스터는 잡지사 기자인 매컬리가 트레이시의 결혼식을 취재하는 것을 돕는다. 그런데 상황은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트레이시는 매컬리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식날 조지와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는 것. <필라델피아 스토리>의 출발은 기습적이다. 덱스터 역의 캐리 그랜트, 트레이시를 연기한 캐서린 헵번은 초반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인다. 둘은 티격태격하면서 몸싸움까지 서슴지 않는다. 트레이시가 남편이 사랑하는 골프채를 부러뜨리면 남편은 아내를 바닥에 넘어뜨리기까지 한다. <필라델피아 스토리>는 분위기가 극도로 위태로운 상황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으며 이는 남녀의 결별로 곧 이어진다. 영화 초반에 부부는 이혼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후 이 커플이 어떻게 사랑의 줄다리기를 벌이는지, 그리고 재결합하는지가 관건이다. 영화비평가들은 서로를 지독하게도 괴롭힐 정도로 애증관계를 되풀이하는 커플의 이야기를 하나의 ‘전쟁’에 비유하곤 했다.
<필라델피아 스토리>는 스크루볼코미디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거론된다. 스크루볼코미디는 1930년대 이후 미국영화에서 재치있는 대사와 계층적 갈등, 그리고 남녀의 연애 스토리를 적절하게 섞으면서 인기를 누렸다. 배우 캐서린 헵번처럼 대사에 능하고 남성에게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이미지의 여배우는 이 장르에서 스타의 지위에 올랐다. 영화 결말에 이르러 덱스터와 트레이시 커플은 재혼하는 해프닝을 벌인다. 그럼에도 여주인공은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며 말끝을 흐린다. 모호한 해피엔딩이다. <필라델피아 스토리>는 장르영화 대가로서 조지 쿠커 감독의 역량을 확인하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