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큐멘터리는 중립적이지 않다, 전혀"
선생님이 하급생 꼬마들에게 타이른다. “받아쓰기라는 말은 받아쓰면 안 돼요.” 졸업반 두 소년한테는 이렇게 당부한다. “중학교에 가면 너희 둘이 서로를 돌봐야 한다. 그렇다고 겉돌지는 말고.” 자폐증을 앓는 소녀는 햇살 따스한 학교 뒤란으로 따로 불러내 다짐받는다. “특수학교 가고 나면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니 궁금할 거야. 토요일마다 기다리고 있을게.” 서너살 먹은 철부지부터 사춘기 소년 소녀까지 열두명의 아이들이 한데 모여 조르주 로페즈 선생님과 공부하는 조그만 교실. 모두가 둘러앉은 책상에서 선생님은 갑자기 털어놓는다. “내년에는 가르칠 수 없단다. 학교에는 새 선생님이 살게 될 테고, 동네에 다른 집을 얻기도 힘들 거야.” 침묵을 깨고 말썽대장 꼬마가 제안한다. “새 선생님이 집을 얻으면 돼요!”
4월의 세 번째 일요일 서울에서 조용히 개봉한 니콜라 필리베르(52) 감독의 다큐멘터리 <마지막 수업>(Etre et Avoir 맨 앞 e 위에 삿갓 악상 있음)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나 에드몬도 데 아미티스의 <쿠오레> 같은 동화를 낡은 책장 구석에서 다시 뒤져내게 만드는 다큐멘터리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마지막 수업>은, 규모는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집으로…>와 비슷한 성취감을 만끽했다. 생테티엔 쉬르 우송 시골 마을 초미니 학교의 교실 구석에서 be동사를 익히고 구구단을 외우는 아이들을 찍은 이 다큐멘터리는 프랑스 박스오피스에서 170만명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해 기록영화 흥행사에 자랑스런 흔적을 남겼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가장 작은 것> <루브르 시티> <애니멀스> <들리지 않는 땅> 등 <마지막 수업> 개봉에 앞서 회고전을 통해 소개된 필리베르의 전작들은, 청각장애인들의 대화를 듣고 박제동물의 눈빛을 읽어내며, 미술관 디스플레이의 이면을 투시하는 끈질긴 작가의 초상을 그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주한 프랑스대사관의 초청으로 4월20일 서울로 날아온 니콜라 필리베르 감독은, 지독한 인내와 확신없이는 완수조차 불가능한 작업에 생의 절반을 걸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눈동자로 난생처음 만난 도시와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직접 한국을 방문해 <마지막 수업>의 관객을 만나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적극적으로 희망했다고 들었다. 어째서인가. 한국을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가 오고 싶은 이유였다. 하지만 나 혼자가 아니라 <마지막 수업>의 조조, 나탈리, 마리 같은 아이들과 함께 온 셈이라, 길 잃은 기분은 아니다. 다른 문화권 관객의 반응을 보는 건 무척 흥미롭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극영화 조감독을 거쳐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여정을 설명한다면. 계단을 하나씩 오르듯 여기까지 왔다. 교수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3년간의 철학 수업은 세상을 관찰하는 눈을 열어주었다. 영화에 매료됐지만 내가 과연 감독이 될 수 있을까 의심했다. 당시에 영화학교를 가려면 수학, 물리, 화학을 잘해야 했다. 그쪽 과목이 젬병이었던 나는 영화학교를 단념하고 현장에서 영화를 배웠다. 그리고, 공동연출로 첫 작품을 만들면서 혼자서도 감독할 수 있겠다는 자신을 얻었다. 조감독 시절 함께 일한 알랭 타네르, 클로드 고레타 감독에게 영화적으로 배운 건 아무것도 없다. 좋은 스탭들과 친교를 맺은 건 성과지만. 다큐멘터리를 택한 것은 내가 상상력이 둔하고 백지 앞에서 스토리를 창작하는 일에 미숙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게 스토리텔링은 이미 존재하는 현실,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도입부에 거북이 두 마리가 교실 바닥을 기어가는 장면이 눈길을 끄는데. 그것은 관객에게 “이 영화는 시간이 좀 걸린다.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배우고 가르치는 행위 자체가 길고 힘겨운 과정이다”라고 예고하는 은유다. 비바람치는 들판과 교실 실내를 번갈아 보여주면서 자연의 매서움과 학교의 안온함을 대조시키고 싶었다. 교실은 어느 정도 따뜻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이란 걸 보여주려고 했다. 거북이는 온기가 필요한 동물이기도 하다. 그건 그렇고 오늘 만난 한국 기자 세명이 모두 거북이에 대해 물었다! 스위스나 이탈리아에서는 나온 적 없는 질문이라 내 입장에서는 재미있다. 거북이가 동양에서 장수를 상징하는 의미심장한 동물이라고는 들었는데, 그래서일까?
처음 촬영을 제의했을 때 로페즈 선생님과 생테티엔 쉬르 우송 주민들의 반응은. 100여 군데 학교를 방문한 끝에 생테티엔 쉬르 우송의 학교에 도착했을 때 좋은 장소임을 직감했다. 반나절 동안 수업을 관찰한 뒤 선생님에게 2시간가량 취지를 설명했다. 사흘 뒤 전화로 승낙의 뜻을 전한 선생님은 부모들의 허락까지 이미 다 받아놓은 상태였다. 물론 그 다음 주민들과 촬영팀이 하룻저녁 미팅을 갖고 촬영 절차와 원칙을 세세히 말했다.
교실에서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한 감독에게는 몇 갈래 길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마지막 수업>은 프랑스 교육제도에 대한 비판을 기대한 관객에겐 의외의 영화일 거다. <마지막 수업>의 톤은 어떻게 결정됐나. 나의 기본적 신념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 보이는 교실이 영화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영화는 사소한 것에서 태어날 수 있고 우리 모두는 각자 삶의 주인공이다. 소소한 일상사도 모두 용기와 결단을 필요로 한다고 본다. 미리 정한 각본이나 메시지는 없었고 교육 전문가가 아니기에 어떤 비판이나 제안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주인공 교사를 고르는 조건에도 그의 교육학적 입장은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기술적 측면이건 스토리면에서건 영화가 될 수 있는 공간 혹은 인물인지가 기준이었다. 누군가를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과 그를 영화에 담고 싶다고 느끼는 것은 별개 문제다. 그의 목소리나 하찮은 습관이 중요할 수도 있다. 훌륭한 교사를 많이 만났지만 찍고 싶은 사람은 드물었다.
<마지막 수업>이 다큐멘터리라는 사실을 영화 중반까지 깨닫지 못했다는 관객도 있다. 그만큼 스토리가 그럴 듯하고, 카메라의 위치선정이나 편집방식도 내러티브영화와 유사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전작들을 보아도 <마지막 수업> 오프닝의 거북이처럼 중립적이고 무구한 이미지들을 메타포로 빈번히 활용했다. 내 영화에는 자연의 모습이 자주 나오는데 그 장면들은 배경 장소와 날씨를 명시할 뿐 아니라 내러티브적 효과에 봉사한다. 폭풍우에 흔들리는 나무나 소풍 가서 사라진 꼬마를 찾으러 다닐 때 흔들리는 갈대가 불안과 극적 효과를 자아낸다. 나는 특별히 뭘 찍겠다는 의지없이 시작하지만 촬영을 진행하면서 이야기가 꼴을 갖추고, 무엇을 찍고 싶고, 이 영화를 통해 어떤 표현을 하고픈지 깨닫게 된다. 영화의 실체는 서서히 명확해지고 결말도 드러난다. 때로는 내가 장면을 유도하기도 한다. <마지막 수업>에서 조조가 숫자를 세는 장면이나 선생님이 퇴직을 예고하는 장면은 내 제안이었다. 마치 영화가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를 밝히는 듯하다.
선생님이 자폐증을 앓는 나탈리, 아픈 아버지를 둔 올리비에와 일대일로 대화하는 장면은 <마지막 수업>에서 가장 감정적인 대목이다. 당시 아이들은 카메라의 존재를 알고 있었나. 물론. 아이들이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행동한 순간은 영화에서 단 한 순간도 없었다. 어린이들이 촬영할 때 중요한 점은 카메라를 든 사람과 대상 사이의 신뢰다. 몰래 찍거나 그들이 하는 행동의 옳고 그름을 규정하려 하거나 달리 이용하거나 원치 않는 순간에 촬영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시켜야 한다. 카메라는 언제나 일종의 권력이고 특히 교실의 아이들이 선생님이 허락한 촬영을 나서서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애들의 표정과 눈빛만으로 진심을 감지하려는 민감한 배려가 필요하다.
프랑스에서 다큐멘터리로서는 대단한 흥행을 기록했다. 어떤 부분이 프랑스인들의 성정에 호소했다고 보는가. 입소문의 힘이 컸다. 학교는 누구나 가지만 일정한 나이가 되면 교사가 되지 않는 한 떠나야 하고 돌아갈 수 없는 공간이다. 보편성이 있는 소재였다. 근래 프랑스 내 학교의 이미지는 여러 문제점이 부각되면서 약화되어왔는데, 밝은 학교의 이미지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의 캐릭터가 호감을 산 것도 원인이다. 돈으로 밀어붙인 마케팅 호위를 받지 않은 작은 영화도 성공할 수 있음을 입증해 유쾌하다.
카메라를 몇대 썼나. 한 대다. 편집해 놓은 걸 보면 마치 2대를 쓴 것 같지만. 카메라가 2대가 되면 스탭도 두배로 늘고 교실에 들어갈 구석이 없었다. 무엇보다 내게 2대의 카메라란 설치해놓고 무작정 찍는 감시 카메라처럼 느껴져서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언제나 찍히는 사람들의 옆에서 그들이 찍히는 사실을 아는 상태에서 작업한다.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다큐멘터리는 중립적이지 않다. 나와 그들이 함께 찍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작업을 통틀어 카메라의 대상이 된 인물과 충돌한 경험은 없는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제라르 모르디야와 공동연출한 데뷔작에 얽힌 사건이 있었다. 12명의 프랑스 대기업 사장을 인터뷰한 <고용주들의 목소리>라는 작품이었는데, 그중 한명인 로레알 사장 프랑수아 달이 자기가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쳐질까 걱정해 3시간짜리 TV판이 공중파를 타지 못하도록 1979년 당시 우파 정권에 로비를 했다. 언론의 자유가 걸린 이슈로 화제를 모은 사건이었다. 이듬해 정권이 교체되어 좌파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했는데 방영해주겠다던 <앙텐네2>에서 통 연락이 없었다. 알고보니 프랑수아 달이 미테랑 대통령의 어릴 적 친구였다고 하더라. (웃음)
<마지막 수업>의 프랑스 개봉 이후 조르주 로페즈 선생님과 아이들의 소식은 듣고 있나. 편집하는 6개월 동안 진행상황 보고도 겸해 종종 연락을 취했다. 아이들과 선생님은 물론 첫 시사의 관객이었고 칸영화제에도 초대했다. 극장 개봉 뒤인 11월에는 아이들과 그들의 가족 50명을 파리로 초대해 이틀 정도 시간을 같이 보냈다. 그리고 한달 전 생테티엔 쉬르 우송 지역에서 영화가 개봉됐을 때 다시 방문했다. 이번에는 <마지막 수업>의 한국어판 팸플릿과 포스터를 아이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챙겨가려고 한다. 글 김혜리 vermeer@hani.co.kr·사진 정진환·통역 임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