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의 끝은 어디인가요?
제작연도 2003년 광고주 파파이스 제품명 케이준치킨 대행사 휘닉스커뮤니케이션 제작사 킬리만자로(송진욱 감독)
제작연도 2003년 광고주 IMP코리아 제품명 임프레션
이 정도면 위풍당당하다 못해 뻔뻔하다. 다른 장르도 아니고 동종업계의 아이디어를 통째로 빌려왔으니 얼굴에 철판이라도 깔았음이 분명하다.너무 천연덕스러워 ‘푸하하’ 웃음이 터진다. 눈에 익은 영화장면을 차용한 사례는 수두룩했지만 광고가 광고를 패러디한 것은 머리카락 나고 처음 본다. 무엇을 어떻게 패러디하느냐도 일종의 크리에이티브라고 간주한다면 이번 경우도 발상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반색할 만하다.그러나 얼마만큼 강력한 반향을 유도하고 있는지는 찬찬히 따져볼 일이다.
광고의 자기 복제를 엿볼 수 있는 사례는 속옷브랜드 ‘임프레션’ 광고와 패스트푸드브랜드 ‘파파이스’ 광고다.임프레션 광고는 극장에서만 선보이는 스크린용인데 보는 이들마다 박장대소한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그럴 법도 하다.시쳇말로 감쪽같은 ‘짝퉁’이기 때문이다. 팬티 차림의 두 남자가 있다.노랗게 머리를 탈색한 한 남자는 저편에서 걸어오고 있고, 검정색 장발의 또 다른 남자는 그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두 사람이 엇갈릴 즈음 노랑머리의 시선이 검정 머리의 어딘가에 살짝 머문다.이어지는 그의 속엣말은 ‘엉덩이가 장난이 아닌데’.
사실 여기까지 진도가 나가지 않더라도 웃음보는 이미 발동한다.대한민국 대표미남을 표방한 안정환과 김재원 주연의 화장품브랜드 ‘꽃을 든 남자’ CF를 흉내냈다는 사실을 눈치채는 순간 허파에 바람이 절로 들어간다.원작에서 김재원이 안정환을 곁눈질하며 ‘피부가 장난이 아닌데’라고 부러움의 속삭임을 들려준 대목이 엉덩이로 바뀌었을 뿐 이 광고는 모델의 생김새, 내용전개 등에서 일란성 쌍둥이를 자처하고 있다.
파파이스 광고는 흑백 화면에 전속모델인 장나라가 눈물을 또르륵 떨어뜨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배경음악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다.명랑소녀와 눈물, 민중가요 등이 부조화의 감성을 자아내는 가운데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라는 연상작용이 일어난다. 다름 아닌 지난 대통령선거 때 가장 말랑말랑한 CF로 뽑힌 노무현 대통령의 ‘눈물’편이다. 주인공 모델의 얼굴을 포착한 카메라 각도 등 ‘눈물’편을 그대로 복사한 이 CF는 장나라가 케이준 치킨의 매콤한 맛에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린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유머 광고로 급격히 선회한다.장나라가 대통령 후보처럼 연단에 올라 옆사람의 손을 잡은 채 합동인사를 올리는 대목 등 끝까지 대선 광고의 패러디임을 숨기지 않는다.
임프레션과 파파이스 CF는 모두 ‘광고를 패러디한 광고’라는 독특한 정체성으로 강렬한 첫인상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특히 임프레션 광고는 제품의 성격에 맞는 패러디 대상을 잘 찾은 듯 보인다.남자가 남자의 피부에 반했다라는 ‘꽃을 든 남자’ CF의 설정은 굳이 동성애 코드로 확대 해석하지 않더라도 ‘섹시’한 기운을 폴폴 풍긴다. 그러나 원작은 모델의 지명도만 돌출돼 끈적끈적하면서 매혹적인 발상이 다소 바랜 감이 있었다. 반면 패러디 버전은 ‘당당한 아류’를 표방한 듯 피부와 화장품의 관계를 좀더 노골적인 엉덩이와 팬티의 그것으로 치환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도발적으로 채색하고 있다. 이는 극장 광고라는 주변적 매체의 속성, 젊은 감각의 튀는 속옷을 표방한 제품 컨셉 등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장기적인 호의도 제고에 얼마나 기여할지 미지수지만 히트 광고를 대놓고 베끼는 전략은 게릴라식으로 치고 빠지는 승부로는 괜찮았다.
파파이스 CF는 임프레션에 비해 더 대범한 축에 속한다.누가 감히 대통령의 눈물을, 닭다리를 든 장나라의 원초적인 눈물로 패러디할 것이라고 생각했겠는가. 비장미, 엄숙함 등 정반대의 정서에 능청맞은 먹을거리 자랑을 삽입한 이 CF는 임프레션 광고보다 한층 더 비틀고 뒤집는 패러디의 맛을 전한다.그러나 일부는 대선 광고를 갖고 논 것이 언짢은지 호의적인 반응을 유보하고 있다.시도는 용감하지만 제품의 특징과 매끄러운 연결고리를 가지면서 자연스레 군침을 유도하기에는 소재가 다소 튀는 구석이 없지 않다.
‘패러디의 한계는 어디인가요?’를 묻는다면 이젠 ‘없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나’를 외치는 독창성보다 ‘우리가 남인가요?’라며 영역을 오가는 활동성이 더 돋보이는 시대다. 그러나 이것이 재치의 산물인지 아니면 안이함의 결과인지는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또 익숙한 것의 재탕에 대부분의 감상자가 터뜨릴 웃음이 쓴웃음인지 비웃음인지 함박웃음인지도 구분해야 할 것 같다.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