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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네츠카 홀랜드 감독의 <비밀의 화원>

박제된 소년의 외출

Secret Garden, 1993년감독 아그네츠카 홀랜드출연 케이트 메이버리 EBS 5월3일(토) 밤 10시

감독 장 르누아르는 “예술이란 모름지기 기술진보의 산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화가의 작업방식, 특히 인상파 화가들을 예로 들면서 설명했다. 갑갑한 실내에서 그림을 그렸던 화가들을 들판으로, 그리고 거리로 나갈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바로 ‘튜브물감’이라는 논지다. 튜브물감의 발명으로 물감이 굳어버리는 것을 걱정할 필요없이 화가들이 마음껏 외부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던 것. 그래서 외부 정경에 민감한 인상파의 화풍이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영화 <비밀의 화원>은 당시 예술가들이 느꼈던 무한한 해방감을 약간이나마 공감하게끔 한다. 어두운 실내에서 붙박혀 지내던 소년, 그의 소박한 외출을 지켜보기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메리는 영국으로 온다. 이모부가 사는 대저택에서 살게 된 것. 그런데 이모부는 아내의 죽음 때문에 은둔하고 있는 상태다. 하녀장인 메드록은 사사건건 메리의 행동에 참견하고 그녀를 저택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메리는 어른들 몰래 정원을 뒤지고 다니며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 어느 날 밤, 저택에서 메리는 콜린이라는 소년을 발견하는데 그는 제대로 걷지못하는 상태. 콜린의 딱한 사연을 알게 된 메리는 그를 비밀의 화원으로 데려가고 걷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비밀의 화원>은 원작소설로 잘 알려진다. 아이들 우정을 강조하는, 비교적 단순한 내용의 원작에 비해 영화 <비밀의 화원>은 결이 훨씬 풍부하다. 메리라는 소녀의 과거로부터 출발해 대저택에서의 황량한 생활에 이르기까지 차곡차곡 에피소드를 쌓아가고 있다. 캐릭터 역시 설득력이 배가되었다. 메리라는 아이가 “우는 법을 몰라서”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사연, 그리고 주변 인물들에 관한 개성적 묘사 역시 세밀함이 추가되었다. <비밀의 화원>은 원작이 갖는 잠재적 서정성을 어떻게 영상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엔 아름다운 풍광도 한몫하고 있다. 메리와 친구들이 발견한 비밀장소, 다시 말해서 화원이 시시각각 빼어난 자태를 드러내는 것. 자연의 풍경이 영화를 풍요롭게 하는 과정을 유심히 살필 만하다.

<비밀의 화원>의 아그네츠카 홀랜드 감독은 폴란드 출신 여성감독. 아그네츠카 홀랜드 감독은 밀로스 포먼 등에게서 영화를 공부했다. 시나리오 작가로 일했던 경력답게, 홀랜드 감독은 영화 스토리텔링에서 훌륭한 테크닉을 자랑한다. 그것은 <비밀의 화원>이라는, 익숙한 원작을 성장영화 겸 ‘잃어버린’ 유년에 관한 이야기로 업그레이드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다른 스탭들 공로도 적지 않다. 로저 디킨스의 촬영은 수려하기 이를 데 없고 즈비그뉴 프라이스너의 영화음악 역시 귀를 기울일 만하다. <비밀의 화원>은 감독과 다른 스탭들이 빚어낸, 솜씨좋은 협동작업의 결과물이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