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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 발표 - <에너미>의 허성욱[4]

“뉴스가 나의 뮤즈다”가작 <에너미>의 작가 허성욱

가작 당선 소식을 처음 알려주고 인터뷰 약속을 잡은 뒤 문의전화가 두 차례 왔다. 음, 저 상금이 있나요? <씨네21>이 한겨레신문사 몇층이죠? 나중에 보니 이건 문의가 아니라 확인전화였다. 공모에 응하기는 했지만 애초부터 기대가 없었는데, 낮잠 자다가 얼떨결에 장난전화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허성욱씨죠, <씨네21>의 이성욱 기잔데요, 이번에 당선되셨어요. 어떤 못된 녀석이 이름가지고 장난치는구나 싶었다. 그로서는 그럴 만도 했다. 처음 써보는 시나리오, 그것도 한 차례의 수정도 거치지 않은 생짜 초고를 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허성욱(28)씨를 초짜로 볼 수만은 없다. 서울예대 사진과와 상명대 영화과를 거쳐 김기덕, 이현승 감독 아래서 조감독으로 수련을 쌓았다. <실제상황>의 시퀀스 감독, <수취인불명>의 조감독을 했다. 김기덕 감독에게선 시나리오에 대한 감성적 접근법을, 이현승 감독으로부턴 인과율과 구성적 치밀함을 배웠다고 한다. 지금은 뮤직비디오 연출쪽으로 빠져나온 상태다. 뮤직비디오 프로덕션 ‘hfilm’에서 감독으로 일하면서 다시 영화일을 꿈꿨고, 수많은 트리트먼트 작업을 하면서 착상이 떠오른 4개의 시나리오를 틈나는 대로 동시에 쓰다가 가장 먼저 완성된 걸 시험삼아 보내본 것이다. 트리트먼트 작성에 1∼2일, 초고 작성에 일주일 정도가 걸린다는 초고속 작업이었다. 허씨는 고심해가며 작업하는 수많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에게 미안한 마음을 거듭 밝혔다.

어떻게 구상했나. 히어로가 없는 안티히어로의 대결구도인데 한창 촛불시위가 일어날 때 모티브를 얻었다. 뉴스에서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폭력적 행태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즉물적으로 반응했다. 내가 일반인의 스태미나보다 100배쯤 세면 저 진압경찰들을 실컷 때려줄 텐데. 주먹으로 때리면 마스크가 찌그러지면서…, 이런 걸 상상하면서 통쾌해했다. 나쁜 사람을 혼내주는, 복수해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러면서 김지하의 <오적>을 떠올렸다. 마침 고위공직자의 부패행위가 문제되고 있기도 했다.

다른 첨가물이 없는 정통 스릴러를 택했는데, 일부 캐릭터는 사실성이 떨어진다. 가장 우려됐던 부분은 <쎄븐>하고 비슷한 형식이 되지 않았나 싶은 거다. 염두에 둔 건 아닌데 쓴 결과물을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에 여러 장치를 두면서 구성해갔다. 주인공인 나쁜 형사는 처음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불쌍한 인물로 구상했다. 경찰서 내부구조상 어찌할 수 없는…. 기자는 가장 나중에 추가했는데 급조한 측면이 있다. 친구 중에 기자가 있어 자문을 구했으나 제대로 도움을 받지 못했고 결국 가장 아쉬운 캐릭터가 되고 말았다.

국내에선 스릴러 장르가 유독 상업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40쪽 분량의 트리트먼트를 가지고 몇몇 프로듀서에게 보여줬더니 “스릴러가 되겠냐”는 반응이긴 했다. 어디에선가 앙케트 조사한 걸 봤는데, 관객이 보고 싶어하는 장르 2위가 스릴러였다. 못 만들어서 그렇지 잘 만들면 더 강점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코미디도 다른 성질을 가미하면서 변형하니까 더 잘되지 않나. 아무튼 안전장치라고 할까, 코미디도 두편 쓰고 있는 중이다. 애정 결핍에 빠진 남자가 주인공인데 반(反)포레스트 검프 같은 이야기다.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나. 항상 업데이트되는 뉴스에서 대부분을 얻는다. 공상이 많아서 뉴스에서 본 것을 이렇게저렇게 발전시켜나간다. <에너미>도 미국 프로그램인 <인사이드 에디션>에서 본 사건이 도움이 됐다. 흑인이 난도질당해 죽은 사건이었는데, 용의자에 대한 심증은 분명하나 물증이 없어 곤란을 겪었던 이야기였다.

애초 감독을 꿈꿨던 게 아닌가. 지금은 시나리오를 정말 많이 쓰고 싶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써서 좋은 감독님께 부탁드리고 싶고, 각색도 많이 해보고 싶다. 혼자 작업하는 게 좋기 때문이다. 감독은 준비됐을 때 하고 싶다. 사실 처음에 하려 했던 건 촬영감독이었다. 대학에서 촬영을 맡아 작품을 하는데 파트너인 감독이 좀 답답하더라.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방향을 바꿨다.글 이성욱 lewook@hani.co.kr·사진 이혜정 socap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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