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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땐 몰랐을까,<클래식>
2003-04-24

<클래식>2003년, 감독 곽재용 출연 손예진, 조승우

컴퓨터 화면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며 쓰는 이메일 대신 손에 연필을 들고 편지를 쓰던 순간의 설렘, 수시로 이동전화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의 일상을 체크하는 대신 그 혹은 그녀의 소식을 담은 편지를 날라주실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리는 순간의 초조함, 비오는 날 평소 마음에 들어 한 사람의 우산 속으로 뛰어들까 말까 고민하던 순간의 두근거림,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 올까 기다리며 탁자 위로 성냥을 하나씩 쌓아보던 순간의 들뜸…. 이제는 이런 것들을 보고 유치하다고 말하기보다는 왠지 “클래식하다”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고전적인 유치함이 주는 아름다움에 대해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영화를 그다지 많이 본 편은 아니다. 그리고 그뒤엔 영화를 보고자 하는 일종의 ‘용기’가 부족했던 기억이 자리하고 있다. 60년대의 형제 많은 집 맏이로 태어난 이들이라면 이 부족한 용기의 원인을 다소 이해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어릴 때부터 주변의 요구와 압력을 유난히 많이 받으며 희석된 용기를 숨겨둔 채 살아왔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주로 부모님에 의해, 그 이후에는 주로 사회에 의해 그러했다. 지금도 영화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라고 하면, 부모님 몰래 TV에서 방영한 영화 한편을 보다가 책으로 머리를 맞았던 기억과 대학 시절 종로에 영화를 보러 갔다가 만난 시위대 속에서 친구를 발견하고 그 길로 영화 관람 대신 시위대에 참여해 종로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던 기억이 오버래핑된다.

그런 기억들이 습관으로 굳어져 여전히 영화를 자주 보지 않는 내게 <클래식>의 관람은 다시 용기를 요구했다. 학교 업무들로 정신없이 보내는 날이 많은 요즘엔 영화보다 책이나 사람과 만나는 일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늘 바쁜 아빠와 영화관에서 데이트하는 게 낙인 딸아이의 강력한 권유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내 기억 속에 들어오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처음 극장에 들어갔을 때 조금만 보다가 그냥 자야겠다 라고 마음먹었던 각오와는 달리, 마흔살의 나는 어느새 열세살짜리 딸아이와 함께 웃고 울면서 조금씩 영화에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인근 학교에 다니던 예쁜 여학생이 자꾸만 눈에 밟혀도 차마 말을 걸어볼 용기가 나지 않아 바라만 보았던 나의 기억은 비단 내 것만이 아닌, 우리 세대의 보편적인 추억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요즘처럼 맘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멋진 신세대들에게 우리 세대의 추억은 영원히 이해되지 않을 과거일지도 모르겠다. 왜 그리 용기가 없었을까… 왜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이 입 안에서만 맴돌고, 손 한번 잡고 싶어도 차마 팔을 뻗지 못했으며, 돌아서 멀어지는 연인 뒤에서 가지 말라고 소리 지르지 못해 애꿎은 벽만 쳐댔을까… 사랑에도 용기가 필요한 것을 왜 그땐 몰랐을까(다행히도 나보다 훨씬 용기 있었던 내 연인이 못난 나를 받아주었기에 지금 나와 한집에서 밥을 먹고 있지만 말이다). 영화 보는 중간중간 밀려왔던 일상의 피곤함에 하품을 몇번 하긴 했지만, 향수로 가득한 아름다운 수채화 같은 이 영화의 잔상은 마음에 바람 한 줄기로 남았다.

오늘도 초록이 싱그러운 캠퍼스 안을 누비는 사랑스런 젊은 연인들을 보며 난 <클래식>의 지혜와 상민을 본다. 그리고 그 너머로 그림자처럼 아련하지만 환하게 웃고 있는 주희와 상민을 떠올리며, 나의 젊은 날을 기억한다. 사랑하는 두 연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캐논 변주곡의 선율이 맴돌아 흘러나오지 않을까. 방식은 다르겠지만, 생이 지속되는 한 사랑도 계속된다.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나에게도….성동규/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