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이창
중요한 건 카피다!

“워싱턴이 못생긴 사람들의 할리우드라면 할리우드는 단순한 인간들의 워싱턴이다.”라고 존 매케인이라는 미 공화당 상원의원이 말했다는데, 전통적으로 민주당에 우호적인 할리우드를 “머리도 나쁜 것들이 잘난 척하기는” 하고 비꼬는 보수정치인의 다소 악의적인 농담이라 크게 신경 쓸 것 없다. 그런데 곰곰이 다시 생각하다보면, 그의 놀라운 통찰력 앞에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나도 특히 요즘 들어, 매케인 의원처럼, 할리우드와 워싱턴의 유사성을 절감한다. 과연, 쇼비즈니스의 천재들이야, 하고 말이다. 할리우드와 워싱턴은 모두 ‘웰 메이드 무비’를 곧잘 찍으며 전 지구적으로 막강한 마케팅 파워를 자랑한다. 전세계가 할리우드와 워싱턴이 제공하는 퍼포먼스의 고정관객이다.

그저 한 가지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할리우드 제품은 때때로 즐거움을 선사하는데 워싱턴 제품은 번번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는 것이다.

<시카고>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오락도 이쯤 되면 열광할 만하고, 사기라도 이 정도면 속아줄 만하다’고 중얼거렸다. 요리 자체에 식상한 나머지 데커레이션에 재미를 붙인 요리사들처럼, 한때 포스트모더니즘을 표방하는 작가들 사이에 형식파괴의 유행이 번지기도 했지만, 이 정도의 결과물을 건질 수 있다면 형식에 대한 고민도 쓸모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워싱턴 사람들이 할리우드 사람들보다 못생긴 건 틀림없지만, 할리우드 사람들이 워싱턴 사람들보다 머리가 나쁘다고? 글쎄다.

우리는 최근 워싱턴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퍼포먼스 한편을 관람했다. 할리우드영화와 비교한다면 그저 녹화방송과 생방송의 차이라고나 할까. 거칠지만 생생했고, 예술성은 떨어져도 오락성에서는 뒤지지 않았다. 오히려 스펙터클과 리얼리티에서는 앞선 감마저 있었다. 액션영화와 재난영화를 뒤섞어놓은 이 작품은 동종 장르들의 특징인 ‘감동적 휴머니티’의 장치를 군데군데 배치해두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이슬람사원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어 예의를 갖추는 미군 장교의 모습을 방영하는 TV 앞에서 나도 거의 감동할 뻔했다. 점령지에서 미군 병사들이 주민들에게 물과 식량을 나눠주는가 하면 아이들을 안아주고 놀아주고, 정말이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온다 해도 """"비전문배우들가지고 """""이 이상은 찍기 힘들 것이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카메라 앞이 아니라면 절대 연기를 하지 않는 것처럼, 이라크의 미군들도 카메라가 없으면 한 발짝도 안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전쟁 중인 이라크에는 군인과 기자가 거의 물 반, 고기 반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제작팀 뺨치게 팀워크도 만만찮아서, 후세인 시절 비밀경찰의 고문실이나 대통령 일가의 호화저택도 군인들이 헌팅하고 나면 바로 카메라가 촬영에 들어간다.

쇼비즈니스의 세계를 다룬 <시카고>는 어쩌면 애초에 워싱턴을 풍자한 뮤지컬로 기획된 건지도 모른다.

‘유명한 킬러 댄서’라는 소개를 받고 무대에 등장한 벨마 켈리와 록시 하트가 심지어 기관총을 소품으로 들고 나와서 살인범 출신다운 박력있는 율동과 함께 을 부르고 관객이 박장대소하는 영화의 마지막신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중은 딱 떨어지는 이미지를 원해. 구질구질한 내용은 다 필요없어. 중요한 건 카피야.”

여동생에게 애인을 빼앗겼건, 데뷔시켜주겠다는 사기꾼에게 당했건, 복수심에 충동적으로 방아쇠를 당겼건, 어둠침침한 감방에서 서로 물어뜯고 울고 짜고 하면서 심란한 세월을 보냈건, 중요한 건 ‘미모의 살인범’, ‘킬러 출신 댄서가수’와 같은 카피들이다. 그저 기자들이 조금만 협조해주면 된다. 그런데 기자만큼이나 카피의 위력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은 바로 스타 자신이다. 출옥한 벨마는 록시에게 동업을 제의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살인범 댄서도 한명은 약하지만 두명은 얘기가 돼.

대량살상용 생화학무기가 어디 있더냐구? 그런 거 자꾸 물으면 불쾌하지. """""군산복합체와 석유회사들 로비가 뭐 어쨌다고? 여하간 """""" 중요한 건 독재자를 몰아내고 이라크를 해방시키는 거"""라"""니까. """""자, 헤드카피는 이렇게 뽑아주세요.""""""독재 추방! 이라크 해방!

지금 한바탕 떠들썩한 무대극이 막을 내리고 ‘감사합니다’라는 자막이 뜨는 시간이다. <시카고>가 올해 아카데미상을 휩쓴 것처럼, 부시는 이번 작품으로 다음 대선에서 미국민 절반 이상의 표를 휩쓸게 될까.

좌우지간, 쇼 비즈니스는 영원하다! 조선희/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