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나랑 친한 선배언니들은 몽땅 66년생이다. 전생에 이 66년생 언니들과 무슨 원수가 졌는지 여하튼 내 인생의 66년생 언니들은 나에게 많은 영향과 함께 힘이 되어주곤 했다. 그녀들은 모두 능력도 있고 똑똑하고 내 판단기준으로 보면 예쁘기(?)까지 하다. 흐흐흐…. 또한 겉으로 보기엔 왠지 무서워(?) 보이지만 마음속 깊은 곳엔 오골오골 끓어오르는 따뜻한 열정을 감춰두고는 악녀를 자처하고 살아가고 있다. 겁보에 울보에 먹보이기까지 한 초비굴한 난 그녀들의 숨겨진 따뜻한 마음을 알아내선 변태처럼 웃으며 협박을 일삼으며 거의 일주일 순서대로 만나고 다닌다. 협박은 다름 아닌 “나한테 밥 안 사주면 언니 착한 거 까발릴 거야”이다.
각설하고 이 언니들 중 자신의 영화라며 <버팔로 66>이란 영화를 소개한 사람이 있었다. 자기도 66년생이니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 영화란 것을 나에게 소개해주면서 “딱 김정영표 영화야” 그러는 것이다. 바로 그 김정영표 딱지가 붙은 영화를 보면서 ‘으흠… 이 언닌 나와 피를 나눈 친언니가 아닐까’ 하면서 그 백말띠 언니에게 전화했다. “어떻게 알았어? 이 영화 너무 좋아 흑흑….” <버팔로 66>(빈센트 갈로 감독, 1998년). 66년에 태어난 빌리 브라운의 이야기. 화면은 막 출소한 주인공 빌리를 잡는다. 쭉 찢어진 눈, 잔인하게 빠진 턱 하며… 그는 건들거리며 걷다가 침을 퉤퉤 뱉는다. 5년 전 돈을 건 내기에서 버팔로팀이 지는 바람에 그는 감옥에 간 것이다. 그는 이 모든 것이 버팔로팀의 스콧 우즈 탓으로 생각한다. 그런 그는 길 가다가 레일라(바로 그 오동통한 그녀 꺅!! 크리스티나 리치)를 납치해서는 대뜸 “넌 이제부터 웬디 발삼이야” 그러며 자신의 부인 역을 해야 한다고 협박과 함께 납치 아닌 납치를 하며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간다. 미식축구광인 엄마와 아들에게 무관심한 아버지, 그 가족과 상봉한 빌리는 ‘부인’인 ‘웬디 발삼’을 소개하며 같이 밥을 먹는다. 이 거칠고 황량한 가족과 식사한 뒤 빌리는 친구(오맹달 같은 친구가 나온다. 배불뚝이에 베개 눌린 머리 긁적이며…)에게 전화해 스콧 우즈에게 복수하러 간다고 말한다. 친구란 녀석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투로 그 전화를 받는다. 걱정도 안 한다. 빌리는 레일라와 스콧 우즈가 현재 하고 있는 술집을 가기 전에 볼링장에서 5년 동안 사물함을 지켜주었던 주인에게 감사를 표하며 볼링을 한다. 빌리는 그래도 볼링을 잘 치는 친구인 거 같다. 그러던 그들이 우연히 레스토랑에서 진짜 웬디 발삼을 만나는데 진짜 웬디 발삼은 빌리를 형편없는 남자애로 기억하며 자신의 남자친구와 함께 비웃는다. 빌리는 정말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이렇게 만든 스콧 우즈를 죽이고야 말 테다 하며….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예스의 사이키델릭한 음악 속에서 빌리는 시시껄렁한 스콧 우즈를 죽이지 않는다. 자기가 죽고 난 뒤 자기의 무덤에서도 미식축구 이야기를 할 엄마를 상상하며 복수를 그만둔다. 사실 다 별것 아니라고 말하며 그들은 볼링을 치고 친구랑 시시덕거릴 것이다. 난 이런 무가치한 것이 좋다. 대단한 결심을 하고 대단하게 무엇을 실행하려고 해도 순간 무가치해질 수 있는 게 삶이다. 무가치한 일을 일삼다가도 무가치가 가치롭지 않다가 아니라 측정하지 못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라고 할 수도 있다. 빌리는 자신이 죽으면 사물함의 물건을 오맹달 같은 친구에게 주겠다고 했다가 다시 살기로 하면서 그 물건들에 손 못 대게 한다. 으하하하…. 이 작은 협박, 작은 배려, 작은 걱정, 작은 깨달음…. 66년생들이 부럽다. 게다가 감독이 주연까지 하다니, 멋있다. 겉으론 무섭게 생겼지만 마음 약한 소심한 건달이란 도저히 미워하기 힘들다. 착한 얼굴로 비열한 짓 하는 사람들보단 생욕하며 걸걸한 목소리로 일하는 백말띠 언니들…. 영락없는 빌리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영어를 잘 못하는 나로선 동짜몽에게 통역찰떡을 받아먹고 감독이랑 전화하고 싶다. “야!! 넌 최고의 무가치 박사야…. 캬하하하 멋져!!” 난 이렇게 겉으로만 무서운(?) 백말띠 언니들을 사랑한다. 김정영/ 영화제작소 청년 회원·프로듀서 sicksadworld@orgi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