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로자 룩셈부르크, 장만옥.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매부리코라는 것. 앞의 두 사람은 매부리코임이 분명해 보이지만 장만옥은 아니라고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의 옆모습을 한순간 집중해서 보면 그가 매부리코임을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장만옥은 아직 살아 있으니 어쩌니저쩌니 말을 못하겠고, 이미 죽은 앞의 두 사람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을 해볼 참이다.
두 사람은 19세기 말에 태어났다. 로자가 1871년이고 버지니아가 1882년이니 로자가 조금 앞선다. 로자가 타살된 게 1919년이고 버지니아가 자살한 건 1941년이다. 전쟁상황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벌써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것이 그들의 삶의 끝마무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요소이다. 20세기가 광란과 학살의 시대인 것은, 그리고 그 여파가 21세기까지 미치고 있는 것은 두번의 대규모 전쟁이 세기 초반부터 연이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도 그것의 파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라스트 네임은 아버지와 같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평범한 여성의 삶을 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행복을 바라는 그의 편지들은 애절하다. 버지니아의 라스트 네임은 레너드 울프와 결혼하면서 생긴 것이다. 본래는 버지니아 스티븐이었다. 그의 남편 레너드는, 버지니아가 고백했듯이 버지니아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었다고 한다. 버지니아는 울프 부인이었으나 그것만이 그의 전부는 아니었다.
로자나 버지니아나 소녀적 모습은 청초하다. 아직은 험한 세상에게 괴롭힘 당하지 않은 모습들이다. 조지 베레스포드가 1902년에 찍은 스무살의 버지니아 사진은 조금 우울해 보이기는 하나 내면의 분열이 엿보이지는 않는다. 이 나이에 로자는 이미 세상으로 나갔다. 역사라는 추상 개념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대의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 신념이 그에게 자리잡았던 것이다. 당돌했던 로자에 비하면 버지니아는 아직 방황하고 꿈꾸고 있는 모습이다.
매부리코가 확연히 드러나는 시기에 접어들면 버지니아에게는 실존 자체의 힘으로 모든 것을 감당하려는 자각적 인간 공통의 자존심이 생겨난다. 그것이 치기라 해도 말이다. 지젤 프로인트의 사진들이 이 시기의 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지젤 프로인트는 매부리코를 가진 이들을 유독 잘 찍어내는 재주가 있는 듯하다. 그가 1930년대의 빠리에서 정처없이 도서관을 어슬렁거리거나 아케이드를 배회하던 발터 벤야민을 찍은 것을 보면 사진을 뢴트겐 사진 찍듯이 찍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람의 뼈대를 추려서 찍었다.
혁명가 로자가 세상에 나가 자신의 몸을 바스러뜨렸다면 버지니아는 무너져가는 세기말의 세상을 몸으로 아파했다.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의식의 흐름을 헤쳐가면서 내면의 샘에서 팔뚝 떨어지게 고통을 길어올렸다. 로자는 자신의 실존을 세상 속으로 던져 세상 속에서 살았다. 그렇게 세상을 사랑했는데도 그는 세상에게 배신당했고, 그 세상에게 타살되었다. 그는 개인과 세상의 관계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사례이다. 버지니아는 세상을 자신의 실존 속으로 빨아들였다. 빨려들어온 세상이 그를 병들게 했고, 결국 그는 돌멩이 같은 그 세상을 품고 자살했다. 그는 어두운 20세기를 살아간 실존의 극단적 사례이다.
결국 우리가 버지니아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전인격적 자존심이다. 그의 매부리코는 세상이 아무리 망가져도 결코 그 세상 때문에 망가질 수 없다는 그의 꿋꿋함을 보여준다. 그러니 그의 작품은 소설 몇편이 아닌 그의 삶 자체요, <댈러웨이 부인>만이 그의 세계를 설명해줄 수는 없다. 니콜 키드먼이 아무리 교묘하게 분장을 잘했다 해도 그의 내면까지 드러내 보일 수는 없다.
한때 유행하던 시가 있다.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로 시작되는 박인환의 시다. 센티멘털리즘의 말단에서 떠들어지던 시다. 그렇게 인용되던 버지니아가 지금은 누구의 입에서 어떤 상징으로 오르내리는지, 궁금하진 않다. 누가 뭐라 하든 버지니아는 20세기 실존의 영웅이니까. 그것은 변함없으니까.강유원/ 회사원·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