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연도 2003년 광고주 동서식품 제품명 맥스웰캔커피 대행사 제일기획 제작사 우라늄(김상태 감독)
역(특히 기차역), 옥상, 공중전화박스 같은 공간은 뭔가 특별한 정서적 울림을 준다.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역에는 낭만적이고 쓸쓸한 정서가 묻어나며, 옥상엔 왠지 희망적이고 정겨움보다 밝은 감흥이 먼저 만져진다. 공중전화박스 하면 공일오비의 ‘동전 두개뿐’이란 애절한 가사가 생각나고, 영화 <열혈남아>의 격정적인 뽀뽀장면도 떠오르고, 또 <영웅본색2>에서 해맑게 죽어간 고 장국영의 동안도 겹쳐진다. 보이는 것 이상의 풍부한 아우라를 제공해서인지 이같은 공간적 배경은 인상적이고 함축적인 것을 선호하는 광고에서도 메시지 전달의 유용한 장치로 초대를 받곤 한다.
오비 광고와 맥스웰캔커피(아래 맥스웰) 광고도 이 문제적 장소를 끌어안았다. 공통되게 선택한 장소는 ‘옥상’. 사방이 뻥 뚫려 있고 고개만 들면 하늘을 시야에 가득 머금을 수 있으며 자칫 발을 헛디디면 치명적인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그곳이다. 두 CF는 자유와 위험이 공존하는 장소를 찾았지만 각기 보편적이고 무난한 정서를 골라 잡았다. 오비 광고는 ‘우정’을, 맥스웰 광고는 ‘꿈’을 말하고 있다.
제작연도 2003년 광고주 OB맥주 제품명 오비(OB) 대행사 웰콤 제작사 매스메스에이지(박명천 감독)
먼저 옥상의 두 친구 에피소드를 다룬 오비 CF는 공감을 사기에 충분한 기본 뼈대로 시청자의 시선을 기선 제압한다. 옥상에서 친구를 호출해 그들만의 오붓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간에 경험적으로 와닿는 설정이다. 이 광고의 새로움은 ‘왜 불렀어?’, ‘그냥’ 등으로 이어지는 뚱한 대화를 보여준 뒤 ‘그냥 친구가 진짜 친구다’라고 정의를 내리는 대목. 참신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명제가 귀에 쏙쏙 박히며 광고의 노림수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다. 제작진에 따르면 이는 옛날 세대와 다른 요즘 젊은이들의 가치관을 반영한 것이라 한다. 예전엔 친구의 개념이 어려울 때 힘이 되고, 슬플 때는 위로가 되는 것 따위의 구구절절한 설명이 뒤따랐지만 이젠 그냥 매일 보고, 그냥 만나면 즐거운 존재로 변했다는 것이다.
OB맥주가 OB라거의 대체 브랜드로 8년 만에 내놓은 오비는 이렇게 신세대의 공감대를 파고들며 ‘젊은 부활’을 노리고 있다. 친구란 컨셉은 신규 브랜드 대신 왕년의 유명상표인 오비를 재활용한 것과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그냥’에는 이물감이 전혀 없는 익숙함의 뉘앙스가 듬뿍 담겨 있기 때문이다.누구나 알고 있는 브랜드를 싱싱한 부대에 담아 소비자를 찾아가겠다는 까다로운 전략적 고려를 온전히 ‘그냥’이란 매우 쉬운 낱말로 평정한 것은 이 광고에 기꺼이 칭송의 별점을 추가할 만한 사항이다.
그런가 하면 맥스웰 CF는 삼형제의 옥상 회동을 그렸다. 주인공은 영화배우 조승우. 형의 약혼식이 끝난 뒤 모처럼 옥상에 모인 삼형제는 미래에 대해 질문을 주고받는다. 조승우는 ‘앞으로 뭐 할 거냐?’는 형의 질문에 ‘난, 별이 될 거야’란 다소 엉뚱한 대답을 내놓더니 노을 진 하늘을 향해 두팔을 활짝 벌린다.
이 광고는 제품의 목표 소비자인 20대의 고민과 꿈을 담아 안정, 위안 등과 같은 캔커피의 심리적인 가치를 전하겠다는 기획의도를 갖고 있다. ‘끄덕끄덕’ 수긍이 간다. 그러나 약혼식, 별 등 스토리의 구성 요소가 산만하고 연결고리가 느슨해 ‘단축키’를 능란하게 활용하지 못한 인상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으면서도 꿈을 잃지 않는 젊은이의 긍정적인 초상이란 모범 답안도 뻔한 나머지 건성으로 ‘맞습니다, 맞고요’라고 맞장구치게 만든다.
깔끔하게 똑 떨어지는 완결성으로 따지면 오비 CF가 좀 낫다. 오비 광고가 양도 알맞고 모양새도 때깔좋은 호텔 요리 같다면 맥스웰 광고는 먹어봐야 맛을 알 것 같은 평범한 밥상 같다.그럼에도 오비 CF에서 동화책 그림처럼 예쁘게 꾸며진 구름 모양, 말끔하게 단장한 두 모델의 빈틈없는 모습 등은 약간 숨막힌다. 눈부시게 밝은 오후 분위기에 맞게 잔잔한 허밍송을 배경음악으로 배치한 점은 좋았지만 자연스러운 맛 대신 인공 색소를 첨가한 것은 세련미에 대한 애착이 지나쳤다는 인상을 준다.
두 광고 모두 마시는 제품을 우정과 희망의 찬가 같은 감성적인 언어로 이미지화하는 데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모두 아쉬운 구석이 없지 않다. 맥스웰 광고의 구수한 온기를 오비 CF가 수혈한다면 어떠할까. 반대로 오비 광고의 간결미를 맥스웰 CF가 닮았다면 어땠을까. 두 가지 옥상 이야기를 보면서 ‘섞어’ 광고에 대한 엉뚱한 상상을 머릿속에 떠올려봤다.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