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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에서 새벽까지

사기 당하는 사람에게는 다 사기성이 있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언젠가 저녁 귀가 길에 여의도를 지나면서 신호대기 중이었는데 트럭 한대가 오른편에 바짝 붙더니 창문을 열고 운전기사가 소리쳤다. “제주옥돔, 광어, 전복 횟감 좋은 거 있어요. 주문받은 거보다 더 갖고 와서 창고로 돌아가는데 담배값하고 소주값만 주고 다 가져가세요.” 나는 주섬주섬 트럭 꽁무니를 좇아갔다. 트럭은 하필이면 가로등도 드문 어두컴컴한 길가에 섰다. 트럭의 남자는 00수산 대리라는 명함을 내밀면서 가격표를 보여주었다. 전복 32만원, 옥돔 16만원…. 남자는 ‘소주값’ 운운하면서 한 박스에 5만원씩만 받겠다고 했다. 이런 횡재가! 약간의 흥정 끝에 나는 수중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서 14만원을 주고 짐칸 구석에 있던 박스 여섯개를 내 차에 옮겨 실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환한 거실 형광등 아래서 박스를 하나씩 열어보고는 기절할 뻔했다. 전복은 바싹 말라비틀어진 것을 얼음 위에 드문드문 붙여놓았고, 제주옥돔과 광어는커녕 황돔만 다섯 박스였다. 그나마 1주일 뒤엔가 중금속에 오염된 중국산 황돔이 국내에 유통되고 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을 때 이 박스들은 모두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허망한 최후를 맞았다.

나는 보급투쟁 나온 시장의 게릴라들에게 간단히 지갑을 털린 셈이다. 시장의 게릴라들은 양민의 지갑만 노리지 목숨은 건들지 않는다는 게 다행이라고 할까. 사실, 맛있는 회를 합법적인 경로로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먹겠다는 투철한 시민의식이 확립돼 있었다면 게릴라들의 낚시질에 그처럼 간단히 걸려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고 이후의 삶에서 귀감으로 삼고자 했다. ‘사기 당하는 자도 다 사기꾼 기질이 있다.’

최근에 나는 뜻밖의 낭패를 당하면서 새삼 몇년 전의 교훈을 되새기게 되었다. 나는 이를테면, 도와달라는 간곡한 요청에 못 이겨 거리로 나섰다가 뭇사람들에게 돌팔매를 맞는 그런 경험을 했다. 그건, 애인이 강도로 돌변하고 도적이 몽둥이를 드는 것과 같은 역설이었다. 사람이 살다가 그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다. 그런 건 그저 영화적 상상력이 허용하는 사건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자동차 없는 교통사고에서 살갗 대신 마음이 찢기고 보니, 갑자기 영화 속에서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이상한 운명에 걸려들어 허비적거리던 그 딱한 사람들의 얼굴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것이었다.

뇌성마비 처녀를 좋아해서 잠자리를 하다가 느닷없이 들이닥친 가족들에게 몽둥이 찜질을 당하던 종두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황혼’ 무렵에 자신을 은신처로 안내할 사람을 만나기 위해 어떤 술집에 들어섰다가 은신처는 고사하고 밤새 흡혈귀떼한테 시달리고는 ‘새벽’ 무렵 기진맥진해서 이 이상한 술집을 빠져나온 조지 클루니의 허탈한 표정은 또 어떤가. 해가 지글거리는 사막지대 한가운데 ‘U턴’ 표지판 앞에서 차가 고장나는 바람에 차 고치러 어떤 낯선 마을에 들어간 숀 펜은 한 아름다운 여인으로부터 자기 집 커튼을 달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비적비적 그 집으로 따라갔다가 결국 이 낯선 마을에서 온갖 치정에 얽힌 미스터리들의 그물에 포박되어 마침내 돈 잃고 목숨까지 잃지 않았던가.

물론 그 모두들은 ‘유혹에 약하다’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었다.

나이 마흔이 불혹이라고? 글쎄다. 사람의 나이에 불혹이 찾아오는 시기가 있기나 할까. 학문 이야기를 하면서 ‘서른에 뜻을 세우고(而立), 마흔에 흔들리지 않고(不惑)’라고 했을 때, 그건 무슨 뜻이었을까. 어떤 이론을 세우고 그 확신에 흔들림이 없다는 걸까. 아니면 학문에 뜻을 두었으면 그 태도에서 흔들림 없다는 걸까. 어느 쪽도 다 틀린 것 같다. 장국영은 마흔이 훌쩍 넘고도 영화나 음악은 고사하고 심지어 죽음의 유혹에 몸을 던져버렸다. 대중의 스타라는 건 너무나 아찔한 장소여서 늘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과 싸우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제 초심자이긴 하나 그래도 소설 쓰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건 다행스런 일이다. 창작이 인생을 제련해서 금을 캐내는 작업이라면 큰 산 하나가 무너졌을 때 얻을 것이 그만큼 많아질 테니까 말이다. ‘별일없다’는 건 작가에겐 최악의 상황일 것이다. 흔들림 없다는 게 작가에게 결코 좋은 품성일 수 없는 것처럼. 조선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