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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강유원(철학박사) 2003-04-02

현대전의 주역은 잘 훈련된 군인이 아니다. 세련된 유저 인터페이스로 설계된 장비들이다. 이것들은 수많은 밀리터리 마니아들- 이들을, 눈에 불을 켜고 사람을 빨리 많이 죽이려드는 전쟁광과 착각하면 안 된다- 을 열광시키고, 더러는 페티시의 수준으로까지 몰아넣기도 한다. 그런 물건들 중 하나가 헬기다. 유에스(US)가 자랑한다는 무슨 공수부대도, 그 자랑의 원천은 헬기에 있다. 그들이 애용하는 공격용 아파치 헬기의 쪽 빠진 동체와 날렵함은 그것에 의해 깨져나가는 물건과 찢겨지는 살덩어리와는 아무 관계없이 그것 자체로 일종의 완결된 아름다움마저 느끼게 하고, 그러한 미감이 그 헬기를 탄 군인에 대한 인상으로까지 연결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현대전은 치열하게 싸우는 페티시 전쟁인지도 모른다.

요즘 헬기는 거의 탱크 수준으로 딴딴하지만 베트남전 때만 해도 헬기는 타고 다니는 게 겁날 정도로 별볼일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것이든 예전 것이든 헬기를 타면 그 어질어질함은 상상을 넘어선다. 헬기들이 퍼덕거리며 몰려가는 <지옥의 묵시록>의 한 장면은 보기엔 장관이지만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보통 멀미나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 멀미가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몸에서 습관적으로 흥분제를 분비하여 몸과 마음이 지속적으로 들뜬 상태에 있게 되며, 일단 이것에 중독되면 늘 헬기를 타야만 하고 결국에는 마약과 같은 치명적인 대용품을 찾게 마련이다.

전시가 아닌데도 계속해서 헬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들은 예전에는 영웅이었다. 지금은 스타다. 19세기에는 영웅들이 여기저기 득실댔고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을 외우기 싫어도 외울 수 있었다. 20세기 후반의 한국에도 자기 이름 두세자를 여기저기 뿌려놓은 영웅들이 제법 있었다. 조금만 신경쓰면 그들의 이름을 외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21세기는 더이상 영웅의 시대가 아니다. 시대의 영웅들은 사그라졌고, 몰캉몰캉한 멀티미디어적 언론들이 발굴하고 키우는 멀끔한 반짝 스타의 시대가 된 것이다.

영웅이건 스타건 그들은 쏟아지는 관심 속에서 살아간다. 그들의 일상은 스펙터클의 연속이다. 스스로 삶을 조직할 필요도 그럴 재주도 없다. 약간 들떠 있기만 하면 자동 계단처럼 알아서 움직여 다닐 수 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영원히 지속될 수가 없다. 광속처럼 빠르게 몰려오는 대중의 권태가 그들을 뻔하디 뻔한 일상으로 떠밀어버리기 때문이다.

영웅과 스타에게 가장 혹독하고도 심란한 시련은 무관심이다. 헬기 타고 다닐 때 분비되던 흥분제가 더이상 분비되지 않건만 그것에 중독된 그들은 계속해서 그걸 원한다. 도취는 잠깐인데 그 후유증은 크고 길어서 손만 달달 떨리고 안타깝고 눈물나는 금단현상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걸 이겨내지 못하면, 다시 말해서 자신의 맨얼굴과 가라앉은 일상을 견뎌내지 못하면 그는 보통 사람보다 더 깊은 낭떠러지로 한순간에 떨어져 내려 추잡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추잡해지지 않기 위해 이들이 모범으로 삼을 만한 사람이 하나 있다. 그는 1871년 3월5일에 태어나 1919년 1월15일에 죽었다. 그는 절정의 순간에 비참하게 죽음으로써 대중의 무관심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그의 이름은 로자 룩셈부르크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혁명가라 부른다. 어떤 이는 그를 독수리라 부르기도 했다. 그의 평전에서 그의 최후를 묘사한 부분을 한번 보자. “군인들은 로자를 에워싸고 개머리판으로 후려치고 있었다… 이윽고 로자 룩셈부르크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군인들은 대기하고 있던 자동차로 로자를 옮겼다… 그자들은 로자의 시신을 란트베르카날의 다리 위에서 던져버렸다.”

과거에 영웅이었던 사람들, 예전에 스타였던 사람들이 깔끔하게 여생을 살려면 헬기에서 내려온 바로 그 순간부터 과거는 깨끗하게 잊어야 한다. 다른 도리가 없다. 잊혀진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야 한다. 대중에게 잊혀지지 않는 또 다른 로자가 되려면 스스로를 잊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저기 어슬렁거리지 말고, 뻔뻔하게 얼굴 내밀지 말고 처박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로자처럼 비참하게 죽는 게 더 어려운 세상 아닌가.강유원/ 회사원·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