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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미혼모였더라면‥
2003-04-02

프랑수아즈 지루의 자서전을 덮고 나서 불쑥 든 생각은 나도 미혼모였더라면 하는 것이었다. 전쟁의 암운이 깃든 1940년 여름의 프랑스, 미혼모에 대한 인식은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해 보인다. 몸속에 낯선 몸뚱이가 자라나는 데 대한 소름끼침, 경솔했던 자신에 대한 저주,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으리라 믿었던 자존심의 상처,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미혼모가 된다는 데 대한 두려움에 오직 아이를 없애겠다는 생각만 하였다고 한다. 미혼에다 수입도 없으니 낙태를 해달라고 의사에게 매달렸지만 위로 대신 “프랑스의 불행한 정치상황이 당신같이 부도덕한 여자들의 행실 때문”이라는 훈계까지 들어야 했다. 막다른 골목에서 뜨개질 바늘, 양잿물 등 최악의 민간요법을 시도했으나 헛일이었다.

프랑수아즈 지루는 그러나 살아남았다. 가난 때문에 의과대학을 포기하고 열네살에 속기술을 배워 직업전선에 나갔고 시나리오 작가와(마르셀 파뇰의 <파니>가 첫 작품이다) 조감독, <엘르>의 편집장을 거쳐 2차대전 때는 레지스탕스 활동도 한다. 프랑스 좌파를 대변했던 <렉스프레스>의 공동창간자이자 편집주간으로서 도발적이고 급진적인 필력을 휘둘렀던 그는 여성에게 배타적인 프랑스 정계에 여성파워를 일으킨 당사자로 여성부 장관과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다.

한 여성의 삶이 치열해지려면 온갖 차별의 최전선에 서 있어야 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은 현실에 안주해서 살고 있는 스스로를 돌아볼 때마다 바늘처럼 나를 찌른다.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세상의 평판이나 도덕적 잣대와 맞부딪칠 때만이 사안의 핵심이 명료해지고 그 부당함과 싸워나가면서 길러진 힘이야말로 진정한 힘이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부도덕이니 평판이니를 교묘하게 피해서 그것을 거스르는 행동을 억제하면서 사는 삶은 진정한 삶일 수 없다. 당신이 이혼녀라면, 미혼모라면, 매맞는 아내였더라면 그렇게 한가한 글을 쓸 수 없으리라는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비난을 나는 아주 순하게 접수했다. 젊은 시절 여성운동을 하는 친구들을 여성적 매력이 덜한 패거리들이라고 폄하했던 벌을 나이가 들수록 톡톡히 받고 있다.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는다면 여성으로서 제대로 산 인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수아즈 지루도 마흔까지는 남성들에게 매혹적으로 비치는 여성이 되는 것만을 희망했던 것 같다. 언론인으로 여성정치인으로 살면서 그는 페미니스트로 변해간다. 베르나르 앙리 레비와 프랑수아즈 지루는 20년 넘게 세상을 올바로 바꾸어나가는 일과 국제적 인도주의 활동을 함께한 의기투합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남녀문제에서만은 아니었다. <남자들과 여자들>이라는 책을 함께 쓰면서 지루는 앙리 레비에게서 ‘로맨틱하지만 뻣뻣하기 그지없는 마초’를 발견하였고 앙리 레비는 지루에게서 ‘조용하지만 완강한 페미니스트’를 발견하고 경악하고 격렬한 토론을 벌이게 된다. 지루는 노년을 특출했으나 남자들에 가려져 있던 여성의 전기를 쓰는 데 바쳤다. 퀴리 부인, 구스타프 말러의 부인, 칼 마르크스의 부인 제니, 릴케와 니체, 프로이트의 연인이었던 루 살로메의 전기 등을 남겼다.

보통의 가정에서 부모 돈으로 공부하고 무난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별탈없이 사는 여성들은 과거의 나처럼 여성운동 자체를 시답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불행이 찾아들고 가족적 배경이 사라졌을 때 이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무엇인지 분별을 못한다. 헤쳐나갈 용기도 힘도 없다. 진정으로 사회의 모순을 느끼는 것은 스스로가 차별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만이 가능하다. 여성운동도 사회적 편견과 싸우는 목마른 여성들이 뭉쳤을 때 힘과 탄력을 갖는다. 나도 그 편에 서고 싶다는 마음이 미혼모였더라면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이리라.

서구에서는 미혼모도 사회에 얼굴을 드러내놓고 사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남녀관계를 갖지 않고 시험관 아이를 낳는 수도 있는 모양이다. 아무도 도덕적 잣대로 재단하지 않는 것 같다. 아이 아버지를 밝히지 않은 채 두 아이를 낳아 기르는 조디 포스터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의 젊은 여성들에게도 존경받는 배우다. 그렇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많은 여성들이 경탄의 눈으로 바라본다. 조디 포스터는 이 시대의 새로운 여성역할모델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1940년대 프랑스의 불행했던 미혼모 프랑수아즈 지루, 2000년대 미국의 위풍당당한 미혼모 조디 포스터, 그리고 1970년대쯤에 미혼모였더라면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는 동안 한국 여성들의 미래가 어떻게 변해갈지 흥미진진해졌다.김선주/ <한겨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