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누가 더 예쁘니?
제작연도 2003년 광고주 비비안제품명 스킨볼륨브라 대행사 대홍기획제작사 아프리카(차은택 감독)
우리 집은 18층에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사소한 딴 짓 정도는 할 수 있다. 안면없는 이웃사촌이 동행하면 물론 얌전하게 군다. 고개를 떨어뜨린 채 침묵의 시간을 음미한다. 반면 홀로 일 때에는 돌변한다. 어느 공인중개사에서 기증한 대형 거울에 얼굴을 요리조리 비추며 잠시 뿌듯함에 젖곤 한다. ‘왜 이렇게 예쁘게 생겨먹은 거야?’ 하면서. 가끔 기분이 고조됐을 경우엔 우아하게 미소를 짓는 연습도 하고, <개그콘서트>의 김다래처럼 검지 손가락을 쏘며 ‘나 이뽀?’를 깜찍하게 외쳐보기도 한다. 연못에 비친 자기 얼굴을 사랑한 나머지 빠져죽었다는 나르키소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공주병 초기 증세는 갖고 있다고 말해도 될 듯하다.
하물며 현대판 공주이자 비너스인 미모의 연예인이야 어떠하겠는가. 거울을 향해 골백번도 넘게 하늘이 내린 미모를 자축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음의 두 광고는 충분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못생긴 것들이 잘 난 척하기는’ 따위의 조소는 절대 자아내지 않는다. 속옷브랜드인 비너스의 누디브라(이하 누디) CF와 비비안의 스킨볼륨브라(이하 스킨) CF에 관한 얘기다. 전자의 주인공은 당대 최고의 몸값(얼마 전 모 샴푸광고에서 1년 계약에 6억원을 받으며 모델료 기록을 경신했다)을 자랑하는 고소영이고, 후자의 모델은 ‘김남주의 천적’(라끄베르, 비비안, K머스 등 여러 제품의 CF에서 김남주의 바통을 이어받았다)으로 불리는 신예 한은정이다.
예전에도 두 광고를 나란히 소개한 바 있는데 이번엔 더욱 비교 거리가 많아 다시 초대했다. 경쟁관계인 두 업체가 소비자의 지갑을 앞다투어 노리고 있는 제품은 안 입은 것 같은 브래지어다. 비너스는 이를 누디브라로, 비비안은 스킨불륨브라로 각각 명명했다.
제품이 유사한 특징을 지녀서인지 광고도 비슷하게 탄생했다. 공교로운 일이겠지만 ‘사람 머리가 거기에서 거기지’란 반응을 유발한다는 측면에선 두 광고 다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럼에도 몸매 좋고 얼굴 예쁜 미녀스타가 홑겹의 원피스를 입은 채 거울 앞에서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풍경은 시선을 고정할 만큼 매혹적이다.
제작연도 2003년 광고주 비너스제품명 누디브라 대행사 리앤디디비제작사 유레카(김규환 감독)
먼저 누디 CF에서 ‘소영 나르시스’는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꼼꼼히 체크한다. 특히 가슴선 주위에 신경을 많이 쓰는 눈치다. 화면상 그는 몸에 착 달라붙는 얇은 원피스를 입었는데 브래지어를 착용한 흔적이 없다. 여자라면 누구나 신기한 노릇이라고 혀를 내두를 만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때 주위 여성들의 수군거림이 겹쳐진다. ‘미쳤어, 미쳤어’라며 고소영을 비아냥대는 목소리다. 그들은 아마 고소영이 노브래지어 상태인 것으로 오해한 모양이다. 이에 여우처럼 앙큼하고 도도한 미소를 짓는 주인공. ‘안 입은 척’이란 막간의 자막이 제품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알려준다.
스킨 CF에서도 ‘은정 나르시스’가 거울과 마주 서 있다. 피부에 밀착돼 착용감이 거의 없는 브래지어를 입은 게 아주 만족스러운가보다. 허리를 돌리는 등 섹시하게 몸을 흔들어댄다. 여기에도 구경꾼은 있다. 고양이다. ‘주인님이 왜 저러냐’라는 표정으로 ‘야옹’을 외치는 고양이에게 한은정은 생긋 미소를 한방 날려준다.
전체적인 모양새가 쌍둥이처럼 닮아 언뜻 두 광고의 비교우위는 어느 모델이 더 매력적인가에 따라 판가름이 날 것처럼 보인다. 귀족적인 아름다움을 선망하는쪽은 고소영에게, 약간 더 만만하게 섹시한 게 좋은 쪽은 한은정에게 한표를 던지는 식으로 말이다.
흥미롭게도 고소영 대 한은정이 기성스타와 신흥스타의 줄다리기인 것처럼 연출자도 신구대결의 양상을 띠고 있다. 누디 광고는 90년대 초중반까지 히트광고란 광고는 대부분 독식한 김규환 감독이, 스킨 광고는 뮤직비디오 연출의 1인자이자 박명천, 박준원, 차석호 등과 더불어 제4세대 CF감독군에 속해 있는 차은택이 각각 연출을 맡았다. 일류감독들답게 누구의 것이 더 낫다고 얘기하기 곤란한 정도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탐미적이고 감각적으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있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작지만 큰 차이가 없지 않다. 두 광고 공히 자기애로 충만한 여신의 단상을 거울이란 장치로 극대화했다. 그런데 누디 CF는 스킨 광고와 달리 제2의 화자를 첨가해 차별성을 보인다.
한은정이 거실에서 혼자만의 쇼를 즐긴 것과 달리 고소영은 독립된 듯하지만 관객이 있는 개방된 공간에서 자기사랑을 뽐낸다. ‘미쳤어’란 호들갑스러운 여성의 수다는 보기에 따라선 군더더기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제품의 도발적인 이미지와 속성을 강조하는 애교있는 양념 구실을 톡톡히 담당하고 있다.
무엇보다 사회적 인간에게 대답없는 너를 향한 자기만족은 2% 부족한 것임을 새삼 상기시킨다. 고소영 옆에 엑스트라들을 배치한 누디 광고는 결국 나르시시즘이 과시욕 및 타인의 보상과 동전의 양면처럼 근친관계이고, 또 그것들을 통해 완성된다는 사실을 재치있게 알리고 있다. 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