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자료실을 나오면서 허탈해진 나는 Y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DVD가 아무리 4천편이 있으면 뭐하냐? 볼 수 있는 건 80편뿐이던데?” “그거밖에 안 돼? 왜 그렇지?” “안내 데스크에 서너 페이지짜리 DVD 목록 있잖아, 그 목록에 있는 것만 볼 수 있대. 자료실 담당자에게 물어보니까 최근 목록에 있는 80편 정도만 선정해서 공개하고 그 목록도 6개월에 한번 바꾼다는 거야. DVD가 흠집이 잘 나서 관리도 어렵고 어학교재용이라서 그렇다는데 실제로 여기서 DVD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개 공부하다가 잠깐 머리 식히러 오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자료를 많이 공개할 필요를 별로 못 느끼는 것 같더라고.” “논리가 좀 이상하네. 목록을 다 비치하고 4천편 다 보게 하면 우리 같은 영화 전공자들이 뻔질나게 드나들 텐데. DVD를 어학교재용으로만 써야 한다는 그런 법이나 조항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그리고 어학 공부만 공부고 영화 공부는 공부가 아닌가? 그리고 어학용이라고 해도 6개월에 80편은 너무 심한 거 아냐?” “심하지? 솔직히 자료가 아깝더라고. 어학용으로 선정하는 특별한 기준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선정적인 거나 지나치게 폭력적인 건 제외한다는 정도야. 자료를 그런 식으로 제한하니까 정작 영화 공부하는 사람들은 사용할 수가 없겠더라고. 그리고 머리 식히려고 DVD 보는 게 뭐가 어때? 충무로역에 있는 활력연구소 봐. 제발 들러서 머리 좀 식히라고 난리 아니냐? 드나들기 좋고 자료 접근 쉽고 홍보 잘하고 프로그램 잘 짜고, 그 많은 DVD가 활력연구소에 있었다면 벌써 대박났을 거다.” “다른 도서관 시청각 자료실들은 어떨까?” “글쎄? 국립이 이 정돈데 어련하겠어?”이지윤/ 비디오칼럼니스트 emptyba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