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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픽쳐스 나와 투자대행사 차린 쇼이스트 대표 김동주

"위기? 10년 내내 위기였고 기회였다"

코리아픽쳐스 대표 김동주(39)씨가 잠적했다는 소문이 돈 것은 올해 2월부터다. 지난해 말부터 각종 언론 인터뷰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더니 코리아픽쳐스가 투자를 동결했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올해 2월부터 모습을 감추었다. 지난해 <일단 뛰어> <챔피언> <연애소설> <굳세어라 금순아> 등 투자작의 성과가 좋지 못했다곤 해도 <친구>로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회사의 대표가 갑자기 위기에 처한 듯한 이런 상황은 영화계에는 다소 불길한 암시처럼 보였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금융자본의 투자위축이 김동주씨의 잠적설과 맞아떨어진 것도 단순한 우연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2001년엔 <친구>와 <조폭 마누라>의 흥행으로 시네마서비스와 CJ엔터테인먼트라는 양대 메이저에 버금가는 시장점유율을 기록한 코리아픽쳐스가 영화시장에서 철수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마저 감돌던 때였다.

그러던 김동주씨가 결국 코리아픽쳐스에 사직서를 내고 독립해 지난 3월17일 ‘쇼이스트’라는 회사를 차렸고, 그에 앞서 코리아픽쳐스는 정헌조 이사를 신임 대표로 앉히면서 영화투자를 지속한다고 발표했다. 그가 코리아픽쳐스를 나와 쇼이스트를 차리게 된 경위는 어떤 것일까? 그리고 새로 만든 회사는 어떤 형태가 될 것인가? 궁금증을 잔뜩 안고 3월19일, 강남구 신사동에 마련한 쇼이스트 사무실을 찾았다. 아직 회사 간판도 없는 사무실 문에는 컴퓨터로 프린트한 종이에 큼직한 글씨로 ‘쇼이스트’라고 적혀 있다. 미래에셋이라는 든든한 물주가 버티고 있던 코리아픽쳐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기다리자 잠시 뒤 김동주씨가 들어온다. 영상투자자협의회에서 쇼이스트의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설명회를 마치고 왔다는 그는 예상보다 활기차 보인다. 오늘 곽경택 감독의 <똥개>가 첫 촬영을 시작했고,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는 오늘 중에 최민식의 상대역이 결정날 것 같다며 새 회사에 대한 이모저모부터 설명하려 든다. 하지만 말을 끊고 코리아픽쳐스를 그만둔 계기부터 묻는 게 순서일 거 같다.

-코리아픽쳐스를 그만두고 새로운 회사를 만들었는데…. 이거 축하할 일 맞나.

=음…(한동안 침묵). 맞다. 축하할 일이지, 그럼 곡을 할 건가? 축의금 낼 건가, 부의금 낼 건가, 고민한다면 축의금 낼 일이다.

-축하할 일인가, 라고 물은 건 코리아픽쳐스를 그만둔 과정이 궁금해서다. 대표를 맡은 회사였는데 그만두고 새 회사를 만든 경위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세한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내 경영능력이 부족해서 아니겠나. 경제적 상황이나 시대상황, 자금 흐름 등도 문제였고 내가 워낙 감성적이고 즉흥적으로 일을 처리해서 자금 유동성이 흔들렸다고 보면 된다. 회사의 위기를 초래한 대표로서 책임을 지고 사표를 쓴 거다.

-<친구>에 투자해서 국내 최고 흥행기록을 만든 투자사 대표가 2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게 지금 영화계의 어떤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금융자본이 위축된 영화시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처럼 보이기도 한다.

=회사 대표로서 발휘해야 할 어떤 능력이 없었다고 봐야지. 냉철하게 리스크 관리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코리아픽쳐스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코리아픽쳐스는 그간 나름대로 좋은 영화 라이브러리를 확보했고 앞으로도 영화투자를 계속 할 테니까 괜찮을 거다. 그동안 여러 회사를 옮겨 다녔지만 전에 다녔던 데랑 안 좋게 끝난 적은 없다. 지금도 이십세기 폭스나 일신창투 모임에 초청받아 가고 그런다. 코리아픽쳐스와 끝난 걸 이분법적으로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기 발로 나온 거냐, 잘린 거냐는 식으로 말하는 건 듣기 싫다.

-올해 1월 말까지 코리아픽쳐스를 다니다 그만두고 한동안 잠적했는데 어디서 뭘 했나.

=한달간 고향 목포에 내려가 있었다. 어머니 혼자 계신데 가서 재롱도 좀 떨고. 계속 일하느라 밀린 잠도 자고. 일본에 가서 온천도 했고 다시 서울 와서는 메가박스 가서 영화도 봤다. 그러면서 가끔 박기형, 곽경택, 허진호, 박찬욱 감독 등도 만났다. 아무런 준비가 없는 상황에서 그들과 함께 영화하자는 얘기를 했고 회사 설립 전에 <똥개>와 <올드 보이>는 제작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영화투자자들이 많이 움츠러든 상황인데 회사 만드는 데 어려움이 많았겠다.

=한국영화 10년 넘게 했지만 언제나 위기였다. 투자자도 중요하지만 산업은 투자자만 많다고 돌아가는 건 아니다. 극장이 있고 감독도 있고 매니저도 있고, 어쨌든 움직인다. 누군가 영화는 화투판이랑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런 말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광을 팔든 스리고에 피박을 당하든 화투판은 돌아간다. 금융자본이든 토착자본이든 아무리 어려워도 돈이 돌게 마련이고 극장도 어차피 영화를 걸게 마련이다. 안 걸 수가 없다. 한국영화는 항상 기회였고 위기였다.

-대표를 맡은 두 번째 회사인데 전과 다른 각오가 있나.

=직배사 기획실 직원도 해봤고 창투사에도 있어봤고 두루 거치면서 ‘열심히 한다. 잘되면 좋겠다’ 정도로 생각했는데 코리아픽쳐스에서 대표를 하면서는 ‘안 되면 안 되는데’하는 심정이었다. 이번엔? 글쎄, 안 되면 망한다, 아니겠나. 내 성격이 일이 잘 안 풀린다고 잠 못 자고 그런 적은 없다. 막연하지만 잘되겠지, 생각하는 편이다. 상황이 나쁘다고 유머가 줄어들지도 않고, 새로운 도전의식이 생긴다.

-회사를 그만두고 새 회사를 차리는 과정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힘들었을 텐데…..

=잠적해 있는 동안, 날 찾는 사람은 투자자 김동주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 김동주를 찾는 사람들이더라. <상도>에서 느낀 것처럼 역시 장사는 이익을 남기는 게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거다. 모든 게 어렵고 불안한 상황에서 회사를 차리게 됐지만 일할 사람이 모이고 감독, 제작자, 배우가 찾아오는 게, 함께 일했을 때 깨끗하게 일하고 어려운 일 있으면 같이 고민하고, 그런 결과라고 생각한다. 날 찾아준 사람들이 너무 고맙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김동주씨는 잠시 재미난 이야기 하나 해주겠다며 말을 멈춘다. “내가 원래 진지한 사람도 아닌데 심각한 얘기만 하면 기사 읽는 사람들도 지루하다”며. <친구>에서 장동건이 칼에 찔리면서 내뱉은 “고마해라. 마이 묻다 아이가”를 충청도 버전으로 바꾸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는 질문. “고마혀. 이거 경우가 아니잖여.” 그는 영화계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잘하는 사람 중 하나로 꼽힌다. 본인의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직배사 기획실 말단직원부터 오랫동안 영화계에 몸담으면서 현장인력뿐 아니라 배우 매니저나 극장주처럼 주변 인물들과도 두루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 탓이기도 하다. 쇼이스트의 출발점도 일단 사람들이다. 곽경택, 박찬욱, 박기형, 허진호 등 주목받는 감독들의 새 영화가 쇼이스트의 투자를 받기로 했고 배우들도 상당히 적극적이어서 자본금 5천만원으로 시작한 회사로서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작품 투자, 제작에 들어가고 있다. 여기엔 지금의 투자환경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시네마서비스와 CJ엔터테인먼트가 한 지붕을 이룰 가능성이 있는데다 다른 투자자들은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라 이래저래 쇼이스트에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반드시 CJS연합에 대한 유력한 대안이어서가 아니라 영화계에 새로운 투자방식을 도입하는 선구적 역할 때문에 쇼이스트의 행보에 눈길이 모이는 것이다.

-새로 설립한 쇼이스트는 투자사라고 보면 되나.

=우리가 돈을 갖고 투자하는 건 아니니까 투자사는 아니다. 투자대행사쯤 된다. 코리아픽쳐스는 펀드를 모아서 그걸로 투자하는 형태였지만 쇼이스트는 지금 투자자에게 선보일 작품을 내놓고 투자자를 모으는 상황이다. 곽경택 감독의 <똥개>,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 박기형 감독의 <아카시아>와 허진호 감독이 준비 중인 신작까지 4작품 외에도 7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고 바즈 루어만이 연출한 뮤지컬 <라 보엠>의 공연도 준비 중이다. 전부 돈이 있어서 시작한 일이 아니라 일단 작품을 결정하고 투자자를 모으는 형태다. 1년에 한국영화 7∼10편, 외화 5∼7편, 한달에 1편씩 1년에 12편을 만들 계획이다.

-투자 대행사라는 게 무척 생소하다. 지금까지 제작 관행은 제작사와 투자사가 직접 만나는 방식이었는데

=투자사는 영화시장을 잘 모르고, 제작사는 투자사를 잡는 데 애를 먹고 하니까 우리가 나서는 거다. 우리는 당장 모아둔 돈은 없지만 프로젝트를 내걸고 돈을 모을 능력은 있으니까. 전과 다른 점 중 하나는 투자사 지분이 많아진 거다. <똥개>나 <올드 보이>나 투자사 대 제작사의 지분이 7:3이다.

-투자자의 움직임이 좀 있나? 그동안 영화계에서 수많은 펀드가 결성됐지만 그 많은 펀드가 다들 조용한 것 같은데

=오늘 <똥개> 첫 촬영을 했는데 지금 순제작비 26억원 가운데 70%를 확보한 상태다. 5천만원씩, 1억원씩 낸 개인 투자자가 많다. 친구나 선후배, 지인들에게 투자받은 돈이다. <올드 보이>도 씨네서울, 선우엔터테인먼트 등에서 투자받아서 움직이고 있다. 법무법인 한 군데도 <올드 보이>에 투자했다.

-쇼이스트는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투자자를 모을 생각인가.

=이런 방식으로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이면 펀드를 결성할 계획이다. 기존 펀드처럼 5년씩 가는 펀드가 아니라 2년 정도 가는 펀드로 10편 정도에 분산투자해서 2년 뒤에 수익을 나누도록.

-곽경택 감독의 <똥개>는 코리아픽쳐스 시절 투자결정을 한 작품인가.

=그렇지 않다. 코리아픽쳐스에서는 투자를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프리프로덕션이 진행돼야 하는데 당장 돈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코리아픽쳐스를 나와서 여기저기서 돈을 구했다. <똥개> 제작사에서도 날 믿고 제작부가 현금서비스 받아가며 기다려줘서 하게 됐다. <올드 보이>도 마찬가지고. 믿고 기다려준 사람들한테 너무 고맙고 그래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코리아픽쳐스 시절부터 꾸준히 공연에 투자했고 이번에도 공연 기획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코리아픽쳐스에 있으면서 나는 <친구>로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맛봤고 현재 공연팀 이사인 임영근씨는 <오페라의 유령>으로 단일 공연 최고 흥행기록을 만들었다. 지난해 12월에 개막한 <토요일 밤의 열기>도 수익을 내고 있고 공연으로 실패한 작품은 거의 없다. 바즈 루어만의 뮤지컬 <라 보엠>은 아예 100만달러를 미리 투자했다. <시카고>를 구매했던 것도 뮤지컬을 봤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런 대형 공연이 흥행한 것은 최근 몇년간의 큰 변화 중 하나인 거 같긴 하다.

=임영근 이사는 국내 공연문화가 한국영화에 비해 7년이나 10년쯤 뒤처져 있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오페라의 유령>이나 <라 보엠>처럼 외국 공연을 그대로 들여와 보지만 곧이어 창작극이 한국영화처럼 흥행하는 일이 생길 거라는 말이다. 생각해보라. 수입한 공연은 “오, 마이클”, “오, 엘리자베스”이런 말을 하는데 한국어로 된 공연이 제대로 완성도를 갖춘다면 흥행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는가? <친구>를 뮤지컬로 만드는 것도 그래서 진행 중이다. 김광석의 노래로 이어지는 뮤지컬 <친구>라면 관객이 찾지 않겠는가? 다 임영근 이사가 나를 설득해서 하게 된 일이다.

-곽경택, 박찬욱, 허진호, 박기형 등 일단 지금 발표한 영화들은 감독의 지명도가 눈길을 끄는 작품들인데.

=좋은 영화를 만들 거 같은 감독들 아닌가. 곽경택, 박찬욱, 박기형 등은 전작에서 관객을 많이 모으지 못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번 작품은 관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일단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사실 흥행은 점쟁이도 모른다. 퀄리티 있는 작품, 다양한 장르에서 다양한 영화를 하면, 거기서 어떤 영화는 <친구>처럼 되는 거 아닌가.

-돈도 모이지 않은 상태에서 작품만 들고 다니는데 배우가 캐스팅되고 투자자가 모인다는 게 즘 같은 상황에선 쉽지 않은 일인데.

=나는 광고회사에서 시작해서 직배사 기획실, 창투사, 투자사 여러 곳을 거쳤지만 현장에서 보면 늘 주변인이었다. 지금 한국 영화계에서 양대 메이저가 있지만 메이저에 비해 마이너이기도 했고. 지금 나를 지지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은 여러 면에서 내가 대화가 되는 사람이라는 판단을 하는 거 같다. 두루 경험하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해봤고 목에 힘주고 다니는 사람도 아니니까. 생긴 거부터 좀 편안하지 않나? 두루뭉술한 게 내가 살아온 힘인 거 같다. 직배사 다니던 시절이 워낙 직배사가 욕먹던 시절이라 성격이라도 좋아야겠다고 결심했는데 그런 거 아닐까 싶다. 코리아픽쳐스 대표로 있을 때도 책상 앞에 앉아 수익만 따지고 있었으면 지금처럼 사람들이 모여들진 않았겠지.

-외화 수급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바즈 루어만의 뮤지컬에 투자했으니 다음 영화 <알렉산더>도 하게 될 테고 진가신 감독이 제작한 <디 아이>를 수입했으니 <디 아이2>도 할 거 같다. 이래저래 직접 알고 지내는 외국 프로듀서나 감독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완성품이 나오기 전에 정보를 얻게 되고 그러면 선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내가 가진 어드밴티지가 뭐가 있겠나? 한국영화든 외화든 반보 앞서서 관심을 갖고 투자하고 그러는 수밖에.

-예전에 인터뷰하면서 ‘마이너리그의 메이저가 되겠다’, ‘강한 자가 오래 남는 게 아니라 오래 남는 자가 강한 자다’, 이런 말을 했는데 지금도 그런 믿음엔 변화가 없나..

=변함없다. 오래 남는 자가 강한 자다, 라는 말은 <넘버.3> 대사인데 시나리오 보면서 밑줄쳤던 말이다. 잘난 체는 안 하고 싶지만 당장 돈이 없어도 무시당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남들한테 저 회사, 무시 못할 데라는 말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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