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영화 <시카고>는 정교하게 짜여진 장면들을 통해 플롯 전체를 실제 뮤지컬 무대에서의 공연장면과 동일화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일은 실제 뮤지컬을 볼 때의 박진감을 영화 속에서 얻어보자는 전략으로부터 비롯된다. 실제의 연극이 영화와 가장 다른 점은 ‘동시성’의 구현에 있다. 다른 시간대의 광경이 한 무대에 동시적으로 존재하도록 꾸미는 데서 연극만의 독특한 매력이 시작된다. 반면 영화는 몽타주를 기본으로 하고 있어서 본질적으로 ‘순차적’이다. 영화 <시카고>는 가능한 한 뮤지컬 연극의 ‘동시성’을 영화화면 속에 구현하려고 노력한다. 영화의 플롯은 1920년대의 시카고에 존재하는 한 가상의 재즈 바에서 벌어지는 공연장면을 따라 전개된다. 스크린 밖의 관객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또 다른 ‘관객’과 더불어 공연 무대를 보고 있음으로써 실제 뮤지컬 무대 앞에 있다는 착각을 갖는다.
1920년대의 시카고를 지배하던 음악은 말할 것도 없이 ‘재즈’다. 1차대전 이후 모럴의 위기를 겪으며 방황하던 젊은이들이 택한 음악이 재즈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로 상징되는 이 낭만적인 시절을 사람들은 ‘재즈의 시대’(Age of Jazz)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시절의 재즈는 어떤 재즈일까? 뉴올리언스에서 시작된 재즈가 뉴욕으로 가서 완성되기 전 시카고에 기착했다. 시카고는 당시 미시시피 강을 따라 북상하던 남부문화의 한 종착지였다. 그래서 1920년대 재즈의 메카가 되었다. 시카고 재즈의 스타는 루이 암스트롱과 빅스 바이더벡. 시카고에서 뉴올리언스 스타일의 집단 즉흥연주는 솔로 플레이어의 즉흥연주로 바뀌고, 캄보 밴드의 규모는 점차 커져 빅밴드의 출현을 예고한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영화 <시카고>에 나오는 음악들이 1920년대 재즈는 아니라는 점. 오히려 <시카고>는 현대 뮤지컬에서 자주 쓰이는, 빅밴드 형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전형적인 뮤지컬 재즈를 들려준다. 1920년대의 재즈가 낭만적이긴 하지만 지금의 관객에게는 다소 낡은 음악이라는 느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대신 전형적인 뮤지컬 재즈는 박진감 넘치는 리듬으로 등장인물들의 안무를 튼튼히 받쳐 준다. 이에 관해서도 영화 <시카고>가 중점을 둔 것은 시대적인 고증이 아니라 뮤지컬 무대 자체의 역동성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시카고>는 이를 위해 음악에서의 고증 같은 것은 일부러 피해가고 있다.
이 영화는 뜨기 위해서는 추문이든 고상한 이야기든 남김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원칙을 지닌 미국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배반당한 뒤 남자들을 살해한 여죄수들의 세상 고발극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총’에 관한 이야기이다. 총은 미국을 일궈낸 원동력이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은, 총이 전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방의 서랍 속에서부터 존재한다는 점이다. 총은 타인을 밟고 일어서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미국인들의 가장 확실한 친구이다. 총은 자연스럽게 남근의 상징으로도 이어진다. 영화는 두 여주인공이 하얗게 채색된 기관총을 들고 흥겨운 탭댄스를 추는 것으로 마감하고 있는데, 이 장면은 총과 관련된 미국 문화의 특수성을 잘 보여준다. 헤게모니의 향방은 총/남근을 누가 가지고 노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흥겨운 재즈는 결국 총을 가지고 노는 여인들의 춤을 받쳐주는 리듬 역할을 하고 있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