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Y와 영상자료원에서 열린 이강천 감독의 회고전에 갔으나 지각을 했다. 우리는 <죽은 자와 산 자>를 보지 못한 대신 다른 비디오를 보려고 자료실에 들렀다. 지난해 초 김기영 감독의 시나리오들을 복사하고 비디오를 보던 기억이 생생했다. 좁지만 한 공간에서 한국영화 관련 자료들을 찾고 열람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50평쯤 되는 작은 공간이지만 국내외 영화 관련 도서들과 영화를 주제로 한 논문과 국내 출시된 비디오들을 상당수 구비해놓고 있다. 개인적으로 자료실의 최고 매력은 상당수의 한국영화 시나리오들을 쉽게 볼 수 있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필름이 없는 시나리오를 읽을 때의 기이한 느낌, 오리지널 대본과 심의 대본을 비교해서 읽는 묘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Y는 시나리오를 둘러보던 내게 다가와 비디오 보유 편수가 “너무 적다”고 귀띔했다. 일련번호가 찍혀 있어서 비디오 편수는 쉽게 파악되었다. 한국영화가 1천편으로 꽤 공을 들여 수집한 듯했다. 반면 외국영화는 3400편에 불과했다. 합이 4400편. Y는 “중급 비디오숍도 1만편이 넘는데…”라고 했다. 비디오 수집 폭 역시 좁았다. 국내에 출시된 (고로 심의를 거친) 비디오만 모으다보니 해외에서 출시된 거장들의 작품은 일찌감치 제외되었고 국내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도 낄 자리가 없었다. 자료검색도 검색용 PC가 한대 있을 뿐 홈페이지로는 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Y는 잠시 뒤 DVD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열람실 직원은 DVD 타이틀을 구입하고 있으므로 DVD 플레이어를 설치하는 대로 올해나 내년쯤 볼 수 있게 될 거라고 했다. Y는 말했다. “DVD 보려면 중앙도서관으로 가는 게 낫지, 거기 디지털 자료실에 DVD가 4천장 정도 있거든. 다 어학교재래. 외국어 자막하고 더빙이 있잖아….” 난 고개를 끄덕였다.이지윤/ 비디오칼럼니스트 emptyba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