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을 싫어한다고 고백하는 건 쉽지 않다. 무지하고 품위없고 몰상식하다고 매도될까봐 두려워서다. 거짓말을 할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굳이 나서서 떠들어댈 생각은 없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고 선언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겉멋들리고 잘난 척하고 위선적인 사람이란 구설수에 오르기 싫기 때문이다. 오페라가 대중예술이던 구소련의 예를 보면, 클래식 음악이 인간의 본성과는 원래 맞지 않는 존재인 것 같지는 않다. 많은 한국인이 클래식에 대해 솔직할 수 없는 것의 원흉은 아무래도 음악 수업인 것 같다.
학교 수업이란 게 다 그렇지만 음악과 미술과 체육 시간은 특히 괴로웠다. 잘 부르고 잘 그리고 잘 달리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늘 그랬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악보를 볼 줄 모르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고, 감상 시간이면 무조건 음악을 틀어주고 졸면 때렸다. 최악은, 모두의 눈과 귀 앞에서 노래도 부르고 리코더도 불고 오르간도 쳐야 했던 기말고사였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즐거운 음악과 클래식 음악은, 음표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말고는 아무 공통점이 없어 보였다.
<렛츠 브라보 뮤직>은 음악 액션게임이다. <비트 매니아>나 <이지 투 디제이> 등 선풍적 인기를 끈 게임들과 다른 점은,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했다는 것이다. 연주자도 아니고 지휘자, 그러니까 그 모든 악을 총괄하는 대마왕 역을 맡아야 한다. 악기 하나 다루기도 벅찬데 이 무슨 재앙인지 모른다. 실제 플레이해보니 걱정했던 것 이상이다. 신경써야 할 게 너무 많다. 우선 주어진 템포에 맞춰 박자대로 정확하게 버튼을 눌러야 한다. 가끔 템포가 바뀌기도 하는데 허둥대면 절대 안 된다. 강약도 신경쓰고 독주 악기에 신호도 해주고, 훌륭한 지휘자가 되기 위한 길은 참 멀고도 험하다.
잘했나 못했나 박자마다 판정이 뜨고 마디별로 점수가 나온다. 한 박자라도 실수하면 냉정하게 ‘좀더 열심히’다. 콘서트를 보러 온 관객도 있다. 아무래도 전부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 출신인 것 같다. 점수가 조금만 떨어지면 야유가 빗발치고, 일정 점수 이하로 떨어지면 콘서트가 중단되어버린다. 음악 시험의 악몽이 사이버 공간에서 재현된다. 가족 모두가 즐기는 게임을 표명했지만 이 게임의 난이도는 결코 낮지 않다. 아무리 음악에 재능이 없다지만 몇 시간이나 매달렸는데도 한곡도 클리어 못했다.
그래도 때려치우지 않고 계속하는 건, 관객이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덜 쪽팔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처음에는 텔레비전 화면을 뚫어져라 노려보면서 박자대로 꾹꾹 버튼을 누르는 데만 바쁘지만 하다보면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실력없는 지휘자지만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눈물겨울 정도로 잘 따라준다. 박자를 놓치면 다시 누를 때까지 언제까지라도 다음 소절로 안 넘어가고 기다린다. 아무리 느리게 가도 졸지 않고, 성급하게 휘둘러도 불평없이 쫓아온다. 어쩌다 실수로 박자를 맞추기라도 하면 흘러나오는 음악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해봤자 또 실패할 걸 뻔히 알면서도 다시 도전하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음치들을 괴롭히기 위해 치밀하게 짜여졌던 음악 수업만 아니었다면 클래식 음악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들 중 하나가 되었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조금만 더 쉬웠으면 아니면 이지 모드라도 만들어줬으면 좋았을 거란 마음은 여전하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