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1일치 신문 보도에 따르면, 전국 모든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교실을 인터넷으로 연결하는 '온라인 교실' 이 실현 되었다고 한다. 초-중 고교 1만 2897개 컴퓨터실과 22만 2146개 교실에 인터넷을 깔아주고 34만 교사전원에게도 컴퓨터를 지급함으로써 정부가 96년부터 추진해온 교육 정보화 1단계 사업이 완수되었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 사업에 투입한 비용은 무려 1조 4천억원을 상회한다. 보도에 의하면 정부 관계자는 이런 규모의 온라인 교실 실현이야말로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빼면 사실상 세계 최초" 이고 "영국, 미국, 일본, 캐나다 등 선진국 보다도 앞서는 것" (<한겨레>, 4월 21일치 2면) 이라 자랑하고 있다.
자랑할 만한 일 일지 모른다. 다른건 뒤처졌을지 몰라도 정보화에서만은 "앞서 가자"는 것이 지난 몇년간 우리 정부와 사회 일각의 구호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초중등학교에 '온라인'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것은 세계에 자랑하고 싶은 '남보다 먼저'의 성취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자랑의 이면에는 세계에 공개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 감추어져 있다. 교육과 문화의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 인프라는 예나 지금이나 책이고 도서관이다. 우리의 초중등학교는 대부분이 책이 없는 학교, 도서실다운 도서실도 찾아보기 어렵고 도서관도 없는 학교이다. 고등학교는 입시교육의 파행과 망조 때문에 아예 도서실도 도서관도 필요 없기 일쑤이다. 도서실 비슷한데가 있어봤자 거기는 학생들이 가지 않는 곳, 갈 필요없는 곳, 먼지 쌓이고 거미가 집 짓고 귀신이나 나올 법한 어두컴컴한 동굴 같은 곳이다. 교과서, 참고서 말고는 학생들이 책 읽을 시간도 이유도 없고, 읽다가는 되레 야단맏는 데가 우리의 고등학교이다. 학교에 책이 없고 학생들에게 책 읽을 시간을 주지 않는 나라, 책 읽는 교육을 포기해버린 나라가 전국 학교들을 온라인으로 연결했노라 자랑한다면, 그거야말로 선진국은 고사하고 중진국 수준의 나라들도 정말로 "와 와" 입벌리고 놀라 자빠질 일이다.
정부, 학교, 사회는 교육의 영역에서 무엇이 진정한 성취이고 무엇이 허망한 거품인지를 똑똑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컴퓨터, 인터넷, 기타의 디지털 매체는 유용한 교육도구일 수 있고 정보습득의 빠른 수단일 수 있다. 매체의 관점에서 보면 디지컬이건 책이건 모두 매체이다. 그러나 두 매체 사이에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대체할 수 없는 독특한 경험과 성취의 영역들이 있다. 현재의 디지털 기술로는 책 매체의 장점들을 결코 대체하지 못한다.
더 근본적으로, 책읽기는 단순한 정보습득 행위가 아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만나고 타인을 만나 성찰, 사유, 대화를 전개하는 곳, 그래서 정신이 자라고 혼이 즐겁게 춤추어 인간 존재를 확장하는 곳, 거기가 책의 세계이다. 이 춤의 세계는 단순한 매체기술로 대체하거나 거래할 수 있는 정보 장바닥이 아니다. 정신의 성장과 혼의 즐거운 자기확장이 교육의 희생할 수 없는 목표라는데 동의한다면, 이 목표가 내팽개쳐진 곳에서의 교실 온라인화란 허망하고도 허망한 거품 잔치에 지나지 않는다.
또 지금의 지식생산과 유통체제, 저작권 법제상 인터넷은 책의 세계가 가진 정보, 지식, 경험, 판단, 즐거움의 만분의 일도 제공하지 못한다. 인터넷이나 정보전산화로 책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로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다. 가장 창조적인 지식, 새로운 연구 저작물, 값진 정신적 노작들은 인터넷에 공짜로 떠오르지 않고 무상으로 제공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여전히 책의 형태로, 저널고, 인쇄물로 제공되고, 전산화될 경우 에도 그 콘텐츠는 비싼 값을 물어야만 얻을 수 있다. 인터넷으로 접근 가능한 텍스트란 주로 저작권이 해소된 고전들이지 새로운 저작물이 아니다. 세계 선진국 도서관들은 여전히 막대한 규모의 비용을 들여 책과 저널을 구입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인터넷에 들어가기만 하면 무슨 정보든지 공짜로 퍼올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환상이 널리 퍼져 있다.
교육장에서 디지털 인프라 구축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 정보화 사업 못지않게, 비록 순서가 거꾸로 되긴 했지만. 지금부터라도 책과 도서관 인프라를 시급히 구축 할 일이다. 디지털 도구를 이용한 교육이 책읽기의 교육을 결코 경시할 수 없고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정부, 학교, 사회는 알아야 한다. 구미 선지국들은 디지털과 영상시대를 빌미로 책읽기 교육을 내팽개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화하고 있다. 우리만 이 교육의 중요성을 잊고 있는 듯 하다.도정일 | 경희대 영어학부 교수.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