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듣는 이름의 감독이 만든 영화를 별다른 사전정보 없이 보러갔다가 대단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엄청난 쾌감을 선사한다. 대런 애로노프스키라는 신예감독이 만든 <레퀴엠>을 보고 나서 느꼈던 것도 바로 그런 종류의 쾌감이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할리우드의 제작사들은 점쟁이들만 모였나, 저런 무명의 걸물을 도대체 어디서 알고 제작비를 팍팍 대줘서 걸작들을 뽑아내는 거야?’라는 일종의 부러움이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는 데뷔작인 <파이>(π)로 선댄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준비된 걸물이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두 번째 작품으로 <레퀴엠> 같은 과감한 영화를 만들다니, 역시 아무나 저런 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야’라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고 난 뒤 대런 애로노프스키에 대한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다. 다행히 얼마 전 출시된 <레퀴엠>의 DVD 타이틀이 그런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역할을 했다. 수록되어 있는 서플먼트를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상당 부분 추리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플먼트 중에서 그런 역할을 해주는 대표적인 코너는 37일이라는 비교적 짧은 촬영기간을 화면에 담은 ‘The making of “Requiem”’이다. 그가 상당히 자유분방한 목소리로 장면 하나하나를 설명해주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작업 스타일이 한눈에 드러나면서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현란하고 충격적인 이미지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재능있는 감독에 대한 호감과 호기심이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니었는지 흥미롭게도 전작인 <파이>까지 함께 DVD로 출시되었다는 점이다. <파이>는 국내 극장에서 <레퀴엠>이 상영될 당시 최종회로만 제한상영되었을 정도로 실험적인 성향이 강한 작품이라, DVD 출시를 기대하기에는 약간의 무리수가 있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DVD로 만난 <파이>는 <레퀴엠>만큼이나 치밀한 구성과 강렬한 이미지를 가진 우수한 작품이었다. 특히 <레퀴엠>에서 충격적으로 사용된 약물 복용의 연속이미지들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를 영화 중간중간에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묘한 즐거움을 선사해 주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파이>의 서플먼트로 제공되는 제작과정 다큐멘터리인 <Behind Scene>을 <레퀴엠>의 ‘The making of “Requiem”’과 비교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둘 다 할리우드 대작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독립영화들이지만, 극저예산의 전형과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경우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소연/ DVD 칼럼니스트 soyoun@hipop.com
Requiem for a Dream, 2000년감독 대런 애로노프스키자막 영어, 한국어화면포맷 아나모픽 1.85:1오디오 돌비 디지털 3.0출시사 케이디미디어
파이(π), 1998년, 감독 대런 애로노프스키자막 영어, 한국어화면포맷 1.66:1(흑백)오디오 돌비 디지털 2.0 지역코드 3출시사 케이디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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