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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많았으면 좋겠다,CGV 최연소 여성 점장 김형아
이영진 2003-03-19

“저, 아직 병아리 점장이에요. 매뉴얼대로 해야죠.” 사진촬영을 위해 명찰과 홍보용 배지를 잠깐 떼놓는 걸 보고서, “그걸 꼭 해야 하냐”며 “OO점장은 안 달고 다니더라”고 했더니만 곧바로 말꼬리를 나꿔챈다. 김형아(31) 점장. CGV명동5의 관리 책임을 맡은 지 4개월째인 그는 11명의 CGV 점장들 중 유일하게 여성인데다 나이 또한 최연소다. “점장이라고 하지만 바쁠 땐 사무실 폐쇄하고 팝콘 팔아요. 항상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어야죠.”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현장에서 점장인 본인은 ‘5분 대기조’의 분대장 정도란다.

젊은 분대장은 간혹 수모를 겪기도 한다. 나이 지긋한 관객 중엔 불만을 털어놓기에 앞서 “높은 사람 불러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그가 나서면 어른 놀리느냐는 눈빛을 내쏘기 일쑤다. 이건 그래도 좀 나은 경우다. “여자라서 상대하기 싫다”며 등 돌리는 이들도 있다. 곤란에 처할 때마다 “이마에 주름이 좀더 자글자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그는 그래도 관객을 향한 해바라기 생활이 즐겁다. “서비스가 좋아질수록 관객의 기대는 높아져요. 불만도 많아지죠. 하지만 서비스업의 제1원칙은 고객 지향 아닌가요?”

김씨의 서글서글한 성격은 특이한 경력에서 형성된 것인지도 모른다. CGV 점장들의 경우, CJ엔터테인먼트 공채 출신이거나 여타 유통업체 등에서 오랫동안 일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와 달리 김씨는 밑바닥 ‘알바’ 출신이다. 98년 강변점에서 매표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이후 1년이 채 걸리지 않아 정식 직원으로 채용됐고, 이후 인천점, 본사 운영팀 등에서 실무를 익혔다. 아르바이트에서 점장까지 합해봐야 5년이니, 그야말로 ‘초고속 승진’이다. 하지만 그는 “점장된 뒤에 보험 들라는 전화만 늘었다”며 “관객 앞에서 허리 굽히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말한다.

한때 그의 꿈은 시나리오 작가였다. 돌이켜보면, <바그다드 카페>에 들른 뒤부터 영화에 대한 갈증은 더욱 심해졌던 것 같다. 대학 졸업 직후, 충무로에서 ‘서식’ 중인 대학 선배가 있다는 말에 충무로 ‘염탐’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보름 동안의 단식 투쟁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막내딸의 충무로행을 극구 만류한 것. 3년 동안 지역 방송사에서 작가 일을 하며 “후일을 도모하던” 중 그는 <씨네21> 게시판에서 멀티플렉스 스탭 모집 공고를 보게 된다. “하루에 4∼5시간이지만 영화 관련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스크린지기’를 주저없이 선택한 이유다.

누군가는 김 점장의 얼굴이 낯익을 수도 있다. 전남대 지리학과 재학 시절, 전공은 뒤로 제쳐두고 사회대 노래패인 ‘한울림’ 활동에 열심이었던 그는 극장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 1년 넘게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멤버로 무대에 선 적이 있다. 이력이 알려진 탓에 회식자리에서 자주 마이크를 잡게 된다고. “전엔 잘 불렀던 것 같은데 목소리가 옛날 같지 않아요.” “1년 내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성수기라면 휴일을 몽땅 반납할 수 있다”는 그는 시간이 나면 ‘짝’을 고르는 대신 체계적으로 예술경영학을 공부하거나 아프리카 오지 여행을 가고 싶단다. 글 이영진 anti@hani.co.kr·사진 조석환 sky010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