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를 쓰게 되었을 때 나 생각은 너무나 당연했다. ‘<지옥의 묵시록>을 쓰게 되겠군.’
마치 누군가 내 대신 답해준 것처럼 그렇게 객관적인 대답을 스스로에게 했다.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은 영화라는 것이 저렇게 위대한 작업이구나 하는 감탄을 금치 못했던, 감수성이 극도로 들떠 있었던 열여섯에 만난 영화에의 첫 경험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맥박이, 호흡이 얼마나 가빴던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정작 컴퓨터를 켜고 앉으니, 어쩌자고 나는 이토록 오랫동안 <지옥의 묵시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가 갑자기 궁금증이 일었다. 그리고 조금 시무룩해졌다.
돌아오는 칸영화제에 <지옥의 묵시록> 재편집판이 상영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1979년작이니 벌써 20년도 지난 고전(古典)인데, 코폴라 감독은, 필름을 재인화하고 사운드트랙도 디지털화한 2001년판 <지옥의 묵시록>이라며, 새로이 역작이라도 내놓은 것처럼 사기가 충천해 있다고 한다. 그것이 작가정신인가 아니면 장인정신이라고 하는 것인가. 애정인지 집착인지 강박인지 구분하지 못하겠다. 어쨌든 나는, 다분히 십대의 강박이었을지도 모를 그 감동에서 이젠 조금이라도 빗겨나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코폴라, 그에게 여전히 기립 박수를 보내고 경외를 보내지만 말이다.
그리하여 ‘지옥’에서 빠져나와 5분쯤 삐딱하게 눈을 돌리자 떠오른 영화는, 엉뚱하게도 일본영화 <포스트맨 블루스>였다. 내 생각인데, 나도 뜻밖이다. 내가 일본에 각별한 애정이나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딱히 아닌 듯한데, 적어도 국내에 개봉되는 일본영화는 빠짐없이 챙겨 본다. 무슨 이유에선지 게시판에 일본영화 포스터가 붙으면 괜찮은 만화 시리즈를 발견한 것처럼 굉장히 즐거워지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일본사람, 일본음식, 일본영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일본음식. 사실 헤쳐서 먹어보면 별 것 아닌데 접시에 담겨 내올 땐 얼마나 그럴듯한지. 일전에 먹은 음식만 해도 그렇다. 계란말이. 포장마차에서 소주 안주로 먹는 것도 아니고 일류 레스토랑에서 비싼 돈 주고 계란말이를 사 먹다니. 하지만 계란 안에 토마토를 썰어 넣고 날치알을 함께 말아 뚝딱 별미인 척한 것이 여간 이쁘지 않았다.
또 가지 요리. 동네 식당에서도 흔하게 먹는 것이 가지조림인데, 그 가지 위에 조청을 발라 한번 더 살짝 구웠는지 윤기가 자르르 흐르면서 달착지근한 냄새를 풍기는 것이 그렇게 먹음직스럽고 요염할 수가 없었다. 섹시한 가지찜.
일본영화도 그렇다.
<포스트맨 블루스>.
시놉시스만 읽어보면 참으로 뻔한 얘긴데 아니, 시나리오를 완성해놓고 봐도 참 하품나는 얘긴데 그걸 그렇게 깔끔하게, 맛깔스럽게, 아기자기하게 영.화.처.럼. 만들어놓다니. 만약 우리나라에서 그런 영화를 만들었다면, 앞머리를 핀컬 파마한 3류 야쿠자가 자신의 영웅에게 경의를 표하는 장면에서 유치하다고 실소하지 않았을까. 총에 맞아 죽은 남자 주인공과 병사(病死)한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손잡고 가는 장면에선 팝콘을 던지고 싶지 않았을까. 아닌가. 나의 편협한 선입견인가. 영악하고 치밀하고 꼼꼼한 일본인. 각양각색으로 라-멘을 끓여내고 초밥을 빚어내는 재주 아니, 초밥 하나로 수십권에 달하는 만화 시리즈를 출간하는 재주가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코미디면 코미디대로,
멜로면 멜로대로, 호러면 호러, 액션이면 액션 게다가 로망 포르노까지! 장르별로 고루고루 잘 살아가는 일본영화가 좋다. 맛있다.
그 중에서도 굳이 <포스트맨 블루스>을 꼽는 이유는, 감독인 ‘사부’(예명이라고 한다)가 영화이론을 공부한 적도 없고 연출부 경력도 없는, 이론과 현장 경험에 관한 한 ‘영화 무지렁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영화에 대한 애정과 게으름 피우지 않는 노력 그리고 거침없이 굴러가는 자전거 바퀴 같은 재기발랄함에 힘입어 스스로를 “천재 감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배짱과 자신만만함이 마음에 든다. 나도 열심히 하면, 게으름 피우지 않으면, 좋은 시나리오를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위안. 그래서 ‘내 인생의 영화’ 한편, 새로 리스팅(listing)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허황된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