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고향
미라 소비노가 주연한 <미믹>은 그리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었지만, 몇 가지 면에서는 뚜렷하게 인상을 남긴 영화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뉴욕 맨해튼의 지하에 그렇게 거대한 공간이 있고 그곳에 과거의 뉴욕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사용되었던 지하철역이, 몇 십년 전부터 사용되지 않고 지하에 원상태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아주 기묘하게 느껴졌을 정도. 세계의 수도라고 불리는 뉴욕의 지하에 그런 현대판 유물들이 남아 있다고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마천루가 생겨나는 과정에서 과거의 건축물들이 모두 깨끗이 철거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지하에 무엇이 남아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기는 어려웠던 것.
얼마 전 개봉된 영화 <갱스 오브 뉴욕>에서 그려지는 19세기 뉴욕 맨해튼 빈민가의 모습 또한 그와 비슷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스크린 위에 그려지는 장소와 상황이 내가 알고 있는 뉴욕의 과거 모습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 하긴 내가 알고 있는 미국 역사 가운데 뉴욕에 대해선 17세기 네덜란드인들이 점령해 뉴암스테르담이라고 부르다가 영국에 점령되면서 뉴욕이라고 불리기 시작했고, 독립전쟁 당시에는 격전지 중 하나였으며 18세기 말까지는 미국의 수도였다는 정도가 다인 것은 사실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고 일명 메가로폴리스라고 불리는 인구 4천만명의 보스턴, 뉴욕, 워싱턴DC 지역의 중심이자 전세계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라는 맨해튼이 그런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에 가까웠던 것.
♣ 19세기 파이브 포인츠는 넘처나는 이민자들로 인해 주거와 상업과 공업이 혼재된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파이브 포인츠의 유물 발굴 현장.
재미있는 것은 미국인들조차 영화에서 그려지는 맨해튼의 빈민가인 파이브 포인츠의 당시 모습을 생소해 했다는 사실이다. 19세기의 대표적인 슬럼가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스크린에 그려진 모습은 예상했던 수준을 넘어섰던 것. 당시 파이브 포인츠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1842년 그곳을 방문한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다음과 같은 묘사가 잘 말해준다. “여기저기서 오물과 쓰레기로 악취가 진동한다. 추잡하고 찌든 얼굴들이 집집마다 들어차 있고…. 이곳은 그런 돼지 같은 인간들이 사는 곳이다.” 그렇게 묘사하면서도 찰스 디킨스 같은 저명인사가 방문했던 걸 보면 파이브 포인츠는 맨해튼의 관광상품쯤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빈곤과 범죄, 환락과 질병, 폭력과 애환이 그대로 살아 있는 그 곳은, 아마도 지체 높으신 중상류층 사람들에겐 신기해 보였을 수도 있으니까.
중요한 것은 19세기를 지나 20세기가 되면서 파이브 포인츠도 점점 변해갔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의 눈부신 발전 과정에서 슬럼이었던 맨해튼 남부의 파이브 포인츠는 점차 번화한 도시의 한복판이 되면서 과거의 자취가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 5개의 거리가 만나 이루어졌다는 이름에 무색하게 세개의 거리만 남게 되고, 포레이 스퀘어 연방법원 건물을 비롯한 대형 건물들로 하나둘씩 들어섰다. 그렇게 자취가 감춰진 파이브 포인츠의 과거 모습은 1994년 연방법원 건물 주변의 지하를 발굴하던 17명의 고고학자, 역사학자 등으로 이루어진 발굴팀이 무려 85만여점의 유물들을 발견하면서 다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몇몇 장의 사진과 그림으로만 남아 있던 당시 뉴욕 빈민들의 삶을 유추해볼 수 있는 다양한 물건들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 1990년대 유물 발굴이 진행되던 파이브 포인츠의 모습.♣ 파이브 포인츠의 역사를 다룬 책 <파이브 포인츠>.
특히 발굴장소가 지하여서인지 건물들의 지하에 많이 있었던 철공소, 빵집, 살롱 등의 잔해가 많이 발견되었고 더불어 신발가게, 옷가게, 가구점, 식당 등의 광고 간판들도 발견되어 당시 주민들의 일상생활이 어땠는지를 유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 유물들을 통해 전문가들이 내린 결론은 밀려드는 독일,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생활비가 가장 적게 드는 파이브 포인츠 지역에 정착하면서, 주거와 상업과 공업 기능이 지역 내부에서 모두 일어나는 독특한 환경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그러다가 슬럼으로서의 파이브 포인츠가 본격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이탈리아와 중국 이민자가 몰려오면서 기존의 거주민들을 대체해가던 1880년대부터였으며, 1897년에 도시개발정책으로 지역 내 모든 건물들이 철거되면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러한 당시 파이브 포인츠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의 이야기는, 원작소설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허구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연기한 빌 더 부처는 빌 풀이라는 갱두목을 모델로 한 것인데, 그는 징병으로 인한 폭동이 일어나기 전인 1855년에 암살당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런 다소 허구적인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갱스 오브 뉴욕>에 대한 고고학자나 역사학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9·11 테러로 인해 미국인들이 민감해진 탓에 영화의 개봉 자체가 1년 가까이 연기되어야 했고, 개봉 뒤에도 몇몇 장면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생겨났다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영화의 마지막에서 월드트레이드센터의 모습이 드러나는 장면. 과거와 현재의 불행했던 뉴욕의 모습을 동시에 바라보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갱스 오브 뉴욕> 공식 홈페이지 : http://www.gangsofnewyork.com
<갱스 오브 뉴욕> 한글 홈페이지 : http://www.gangsny.co.kr
파이브 포인츠의 역사 페이지 : http://urbanography.com/5_points
파이브 포인츠 발굴작업 페이지 : http://r2.gsa.gov/fivept/fphome.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