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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야만은 계속된다

<게놈>(Genome)이라는 책을 쓴 매트 리들리는 “40억년이라는 지구 역사 속에서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큰 행운”이라고 했다. 그는 생명과학 전문가답게 특히 우주의 가장 위대하면서도 놀라운 비밀인 DNA와 게놈을 발견한 시대에 태어난 걸 감사해했다. 그럴 만도 하다. 만일 1세기만 앞서 과학자로 태어났다면, 그는 십중팔구 다윈의 <종의 기원>이나 <인류의 기원>을 탐독했을 것이고, 마치 70∼80년대 한국의 운동권학생들처럼 부모 속을 썩이고 목사에게 대들다 문제아로 낙인찍혔을 것이다.

나도 가끔 이 시대에 태어난 걸 행운으로 생각한다. 하루에 50통의 전화를 주고받고 한 트럭분의 정보를 소화하며 전광석화처럼 일처리를 해야 하는 지금 시대가, 오전 나절 개울에서 빨래를 하고 오후에는 밭을 갈며 보름 동안 식구에게 입힐 베옷 한벌을 짜던 시대보다 생산성은 믿을 수 없을 만치 높아진 게 사실이나 과연 그만큼 행복해졌는지는 모르겠다. 문명의 엄살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 가치판단의 문제 앞에서 가끔 진심으로 혼란스러워진다. 하지만 여자로 태어날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면 혼란스러울 것 하나 없다. 현대에 태어난 것이 오직 천만다행일 뿐이다. 아니, 100년 뒤라면, 200년 뒤라면 더 나았겠지만 말이다. 만일 19세기 이전이었다면 계급이 무엇이 됐든 다 끔찍할 뿐이다. 자기 이름으로 자기 인생을 사는 현대의 여성에 비하면 춘향이나 향단이나 처지가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갱스 오브 뉴욕>을 보면, 그 야만의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이 영화에서 사람을 죽이는 방식들에 비한다면, 교수형이나 권총자살이나 심지어 단두대까지도 다 안락사에 해당한다. 나는 그저, 일반적으로 사람의 신체를 좀더 조심스럽게 다루는 시대에 사는 걸 퍽 다행으로 여길 뿐이다. 덧붙인다면, 단돈 7천원으로 대니얼 데이 루이스 같은 배우를 두 시간 반 동안 구경할 수 있다는 것도 무지 행복한 일이다.

일찍부터 비열한 거리에서 영화를 만들어온 마틴 스코시즈 감독은 다양한 살인전과를 보유하고 있다. 갱들을 총 쏴서 죽이는 건 다반사였고, <카지노>에선 구덩이를 파서 산채로 묻기도 하며, <케이프 피어>에선 침몰하는 배에 묶어 익사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엽기적인 막간극이었다면 <갱스 오브 뉴욕>은 가히 야만성의 페스티벌이다. 깡패들, 그 야만의 인간들이 야만의 시대를 만났으니, 그야말로 고기가 물 만난 격이다.

권력이란 원래 그 속성이 야만적이다. 권력의 야만성을 견제하고 둔화시키는 과정을 아마도 사람들이 민주화라 부르는 것 같다. 고대 그리스의 제논이라는 철학자는 네아르쿠스라는 폭군으로부터 고문당하다가 자기 혀를 깨물어 왕의 얼굴에다 뱉었다. 결국 왕은 그를 절구에 넣어서 짓찧어 죽였다! 13세기 스코틀랜드의 독립투사 윌리엄 월레스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브레이브 하트>가 보여주지 않았던가. 물론, 실제는 조금 달랐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갱스 오브 뉴욕>이라는 영화는 어쩌면 그 야만의 시대의 마지막 신들을 보여주려고 한 건지도 모른다. 그 시대를 누비던 갱들의 무덤 위로 풀이 우거지고 브루클린 다리가 놓이고 맨해튼의 마천루가 세워지는 장면으로 영화를 끝냄으로써 이제 야만의 시대는 끝났다고 스코시즈 감독은 선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씨네21>의 제작기를 보면, 이 영화를 다 찍고 나서 후반작업 중에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졌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가 개봉할 즈음 미국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이라크를 상대로 두 번째 보복전쟁을 카운트다운하고 있다.

공격성이라는 인간의 본능을 문화와 제도 아래 순치시켜온 과정이 역사라면, 우리는 그래도 인류 역사상 가장 부드러운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부드러운 시대라고 해도, 문화와 제도가 야만성을 완전히 거세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그저 억압할 뿐이다. 마치 ‘쉘로우 그레이브’, 살짝 덮어놓은 무덤처럼. 그래서 이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은 기회만 되면 튀어나오려고 발버둥친다. 다만, <갱스 오브 뉴욕>처럼 도끼와 작두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20세기 코드에 걸맞게 근사한 명분의 껍질을 쓰고 나올 뿐이다. 조선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