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스키, 미국 입국하면 즉각 구속?
대부분이 그런 경험을 하고 있겠지만, 메일 박스를 가득 채우는 수많은 스팸메일은 일상을 피곤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아무리 필터링을 해놔도 수십개씩 쌓이는 스팸메일들 속에서, 스팸메일이 아닌 것을 찾아내는 작업이 만만치 않은 것. 그렇게 스팸메일 퇴치작업을 하다보면 ‘전화해도 연락이 없데…’, ‘토요일날 거기서 보자구…’, ‘형님은 잘 계시지’ 등의 제목과 아주 평범한 발신자 이름을 가진 메일들에서 잠시 멈칫하게 마련이다. 경험상 열이면 열 모두 성인 사이트 광고물이지만 혹 그중에 진짜로 내가 아는 사람이 보낸 것이 있지 않은가 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내용을 확인하려고 그 메일들의 본문을 보면, 이른바 ‘로리타’ 동영상들을 확보하고 있음을 자랑하는 사이트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중고생이 등장한다고 자랑하는 사이트는 물론 해외의 정통(?) ‘로리타’ 동영상을 확보하고 있다는 문구가 새빨간 글씨로 화면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있는 것.
뜬금없이 로리타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그가 최신작 <피아니스트>를 통해 영국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감독상을, 프랑스의 세자르상에서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7개 부문을 수상하며 다시 한번 주가를 올리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올 아카데미상 후보 명단에 <피아니스트>가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의상상 등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르면서, 과거 그의 아동 성추행 행적이 다시 한번 논란이 되고 있다.
세자르상 수상식에서 로만 폴란스키와 <피아니스트>의 주연 배우 에이드리언 블로디.
세계적인 영화감독이지만, 미국에서는 도망자 신세인 로만 폴란스키.
69년 임신한 상태에서 살해된 샤론 테이트.
그 아동 성추행 사건이란 <악마의 씨>(1968), <차이나타운>(1974) 등으로 할리우드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해낸 로만 폴란스키가, 1977년 3월 잭 니콜슨의 집에서 13살짜리 여자아이를 강간한 혐의로 체포되었던 사건을 의미한다. 로만 폴란스키는 그 소녀의 어머니에게 프랑스판 <보그>에 실릴 사진의 모델로 쓰고 싶다며 설득해, 소녀를 잭 니콜슨의 집으로 끌어들인 뒤 상반신 누드사진을 찍고 신경안정제를 타먹인 뒤 강간을 했던 것. <차이나타운> 이후 친하게 지내던 잭 니콜슨은 당시 집을 비운 상태였기 때문에, 강간 사실은 소녀가 그녀의 어머니에게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밝혀지게 되었다.
그뒤 8월부터 시작된 심리과정에서 로만 폴란스키의 불안정한 정신상태가 주요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법원은 약 90일간의 정신감정 기간을 가지도록 명령을 내렸다. 어린 시절 나치수용소에서 구금되었던 경력과 69년 영화배우이자 아내였던 샤론 테이트가 임신한 상태에서 사이비 종교집단에 살해되었던 사실이 그의 정신상태에 심각한 불균형을 만들어냈다는 변호인단의 주장을 받아들였던 것. 하지만 정신감정 기간 동안의 구속된 생활과 예상되는 무거운 형량에 대한 공포에 휩싸였던 로만 폴란스키는 선고공판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78년 2월, 자신이 국적을 가지고 있던 프랑스로 도주해버렸다. 당시 <BBC>와의 인터뷰에서 폴란스키는 “나는 이 사건으로 거의 일년간 고문당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밝혔고, 미국 법원은 그에 대한 선고공판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현재 미국에서 로만 폴란스키는 도망자 신세다. 이미 25년이 넘은 사건이지만, 그가 미국 땅을 밟는 순간 바로 구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그러니 그와 그의 작품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는 순간 전세계적인 이목이 집중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영국에서 아동보호 운동가들이 <피아니스트>에 대한 보이콧 운동을 벌이고 있는 마당에 미국 검찰이 그의 입국을 그냥 방기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당시 사건의 피해자였고 이제는 세 아이의 어머니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만다 게이머는 <CNN>의 <래리 킹 쇼>에 출연하여 “그와 그의 영화는 그 가치에 따라 평가를 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세계와 그가 내게 했던 일은 전혀 별개의 일이다”라고 밝혀 주목을 끌기도 했다.
그렇게 로만 폴란스키의 아카데미 시상식 참석과 수상의 가능성이 화제가 되면서 네티즌들의 찬반 토론도 다양한 사이트를 통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월27일 Movies.com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이 문제에 대한 온라인 투표를 벌였는데, 그 결과 약 50%의 응답자가 “(만약 그가 미국에 들어온다면) 최고형을 언도해야 한다”고 대답해, “조건부로 입국을 허용해야 한다”, “모든 것을 용서해야 한다”는 의견을 압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인들의 법감정이 이와 같다면 상황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당사자와 아카데미 위원회는 물론, 미국 내 여론, 사건의 피해자, 검찰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 상황이 앞으로 약 20여일간 어떻게 풀려나갈지를 주시하는 것은 흥미진진할 일이 될 것이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로만 폴란스키 공식 홈페이지 : http://www.rp-productions.com
로마 폴란스키 사건 관련 뉴스 모음 : http://www.vachss.com/mission/roman_polanski.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