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days of the condor, 1975년감독 시드니 폴락 출연 로버트 레드퍼드, 페이 더너웨이, 막스 폰 시도 EBS 3월8일(토) 밤 10시
거대한 조직, 거대한 음모
삶이 날아가는 건 한순간이다. 전조나 징후 따위는 없다. 불행은 그냥 느닷없이 우리를 덮쳐버린다. <코드네임 콘돌>의 주인공 죠 터너(로버트 레드퍼드)의 일상도 그렇게 순식간에 무너진다. 점심을 사러 나갔다온, 그 짧은 시간 동안 모든 것은 어이없이 변해버린다. 국가기밀을 알았다는 것이 그에게 재앙을 불러온다.
<코드네임 콘돌>은 아메리칸 문학상협회로 위장한 CIA의 하부조직에서 일하는 말단 조사원인 터너의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아침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묘사는 곧 이어지는 참변에 강한 대조 효과를 불어넣는다. 자질구레한 수다를 떨던 동료들이었건만,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일단의 무리가 사무실을 습격해 그를 제외한 모든 조직원이 죽는다. 공포와 위협을 느낀 터너는 이 사실을 조직에 알리고 신변보호를 요청하나, 상사를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에서 되레 총격을 받는다. 그제야 터너는 자신을 죽이려는 무리가 CIA 상부임을 눈치챈다.
터너가 죽어야 하는 이유는 석유 전략문제에 대한 CIA의 내부 문서 전문을 읽었다는 것이다. 그에겐 알 권리가 없다. 그는 국가권력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알아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너무 많이 알았다. 그 사실을 터너는 한참이 지나서야 깨닫는다. 기실, 모르는 건 터너뿐이다. 관객은 그러한 사건의 전모를 일찌감치 알아챈다. <코드네임 콘돌>은 처음부터 미스터리 플롯을 깔지 않는다. CIA의 내부 음모는 초반에 명백하게 드러나서 관객은 터너가 얼마나 거대한 조직, 거대한 음모와 대결하고 있는가를 진작에 알 수 있다. 그럼으로써 영화의 긴장감은 죽음의 그물망에 걸린 터너가 위기에서 벗어나는 과정에 모아진다. 이렇듯 시드니 폴락은 <코드네임 콘돌>에서 히치콕의 스릴러, 곧 관객은 알고 주인공은 모르는 상황에 주인공을 밀어넣고 그가 위기와 누명을 벗어나는 과정을 따라가는 이야기구조를 수준급으로 변주하고 있다.
뒤늦게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터너는 모든 사실을 <뉴욕타임스>에 알리려고 한다. 이에 상사는 말한다. “과연 <뉴욕타임스>가 그 이야기를 실어줄까?”라고. 이 대사는 영화가 만들어진 1970년대 중반의 미국사회 분위기를 간결하게 예시한다. 워터게이터 사건을 전후한 이 시기는 미국에서 진보적 자유주의의 물결이 정점에 이르렀던 때로, 정치권력과 제도, 국가적 이데올로기는 불신과 비판의 대상이 된다. 당시 새로운 장르로 유행했던 정치음모영화 또한 그에 대한 비평문으로 제출됐으며, <코드네임 콘돌>은 <대통령의 사람들> 등과 더불어 이 장르의 수작에 든다. 또한 <코드네임 콘돌>은 당시 소문으로 떠돌던 CIA의 부정을 소재로 한 영화로 꼽히기도 한다. 이유란 fbirdle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