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가 하드웨어 시장에서 철수한 지 2년이 넘었다. 메가드라이브에서 새턴, 드림캐스트까지, 세가는 한번도 1등을 해본 적이 없다. 세가 게임기는 항상 두 번째에 그쳤고, 팬들은 <샤이닝 포스3>나 <아젤 팬저 드라군> 같은 새턴의 명작들이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나왔다면 <파이널 판타지>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평가와 대접을 받았을 것이라고 억울해했다. 드림캐스트로 출시된 <쉔무>나 <스페이즈 채널 파이브> 같은 참신한 시도들이 묻혀버린 것은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게이머들뿐 아니라 경영진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누적되는 하드웨어 적자로 빈사상태에 놓여 있던 세가를 개혁하기 위해 가야마 데쓰가 COO로 불려왔다. 가야마는 취임하자마자 세가가 그토록 집착했던 플랫폼 홀더로서의 지위를 포기하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그리고 도입한 게 플레이스테이션2, 게임 큐브, 엑스박스 등 어떤 기종으로든 게임을 출시하겠다는 멀티 플랫폼 정책이다. 마이너리티 집단은 다 그렇지만 세가 팬들은 충성도가 높다. 하드웨어가 사라진다는 사실에 비통해하면서도 이제야 세가 게임이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되었다면서 기뻐했다. 이들은 세가가 모든 플랫폼을 통틀어 가장 많이 팔리는 게임 제작사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 같지 않았다. 2002년 게임판매량 집계에서 세가는 5위에 그쳤다. 1등인 닌텐도의 1020만장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290만장이다. 닌텐도의 24개보다 훨씬 많은 57개의 타이틀을 발매했다는 걸 고려하면 참담한 결과다. 세가보다 먼저 멀티 플랫폼을 선언했던 코나미, 캡콤은 모두 세가보다 많은 타이틀을 팔았다. 소니나 남코, 에닉스 등을 누르기는 했지만 이들이 각각 37개, 31개, 12개의 타이틀을 출시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몇십만장의 차이는 큰 의미가 없다. 총량에서 밀린 것은 물론이고 확실한 빅히트작을 내지도 못했다. 세가의 간판 중의 간판 <버츄어 파이터4>는 일본에서 고작 54만장 팔리는 데 그쳤다. 100만장을 판 캡콤의 <귀무자2>, 110만장의 코나미의 <월드 사커 위닝 일레븐6>, 280만장의 닌텐도의 <포켓 몬스터 루비, 사파이어> 같은 메가 타이틀이 세가한테는 없었다.
세가 게임들이 <포켓 몬스터>나 <파이널 판타지>만큼 팔리지 못한 것은 보급대수가 적은 마이너 하드웨어로 출시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지나친 외곬이었던 것 같다. 세가 게임기로만 나온 <버츄어 파이터> 시리즈는 늘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하지만 여러 플랫폼으로 나오니 오히려 판매량이 줄었다. 마니아 취향이라는 인상이 강한 세가 게임에, 세가의 하드웨어는 판매 장벽이 아니라 오히려 안정적 판매공간을 만들어주는 울타리였는지 모른다. 세가의 하드웨어를 구입한 사람은 오기로라도 세가 게임을 더 많이 사들였고, 다른 플랫폼을 가진 사람과 신경전을 벌이면서 세가를 옹호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다르다. 마이너 게임기를 살리기 위해 살신성인하지 않아도 된다. 세가 게임은 안 사면서 다른 회사 게임을 사도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다.
세가 게임이 독창적이고 뛰어나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세가는 기존 팬의 호의에 의지하면서 안이한 기획을 쏟아내는 회사와는 거리가 멀다. 잘 만든 게임이 반드시 잘 팔리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더 넓은 세계에서 더 큰 꿈을 펼칠 수 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특유의 색깔을 버릴까봐 걱정도 된다. 신화가 깨진 지금, 세가는 어디로 갈 것인가? 아는 것은 바람뿐일 것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