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격화된 아버지,규격화되지 않은 부정(父情)
이번주엔 아일랜드에서 만들어진 한편의 단편(<레너드>(Leonard) 브라이언 켈리/ 2001년/ 35mm/ 아일랜드)이 방영된다. 자신이 정한 규칙과 청결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아버지 레너드. 그의 강박적 집착은 똑같은 크기로 당근을 썰어야 하고, 새먹이를 줄 때도 줄을 맞추며, 심지어 일을 할 때는 초시계를 맞춰놓을 정도이다. 그런 그에게 24년 만에 아들이 찾아온다. 당연히 아들의 듬성듬성한 행동이 눈에 거슬린다.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심사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아버지 또한 자신의 집착적 행동을 줄이기 위해 조금씩 노력을 기울인다. 어찌보면 이런 이야기는 지나치게 천편일률적으로 흐르거나 의도와 무관하게 규격화될 소지가 있다. 하지만 <레너드>의 표현은 상당히 정제되어 있으며, 감독은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세심한 주위를 기울인다. 아버지와 아들의 시선은 엇나가는 듯하면서 부딪치고, 그들이 얼마만큼 정에 굶주려 살았고, 서로를 그리워했는지를 미세하게 드러낸다. 광각렌즈로 집안의 규격화된 풍경을 보여주고 빠른 컷으로 아버지의 행동과 시선을 잡아내며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언성을 높이지 않으면서도 처음의 긴장이 이완되고 부자지간이 자연스럽게 화해하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2002년 클레르몽 페랑 국제단편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을 만큼 대중적인 감수성도 놓치지 않고 있다. (KBS2TV 2월28일(금) 밤 1시15분 방송) 조영각/ <독립영화> 편집위원 phille@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