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들이 운영하는 생선가게가 있다. 물론 고양이들이 바다에서 생선을 잡아온 것은 아니다. 어부들이 잡았다. 어부들은 자신들이 생선가게를 직접 운영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생선을 좋아하고 생선에 관해 많이 알고 많이 배운 고양이들에게 생선을 맡겼다. 생선가게에는 고양이 수만큼의 특징을 가진 고양이들이 있다. 간부 고양이에 지배인 고양이, 가게의 최고경영자인 고양이도 있다.
고양이들이 모두 생선을 좋아하기 때문에 최고경영자를 비롯해서 감사를 맡은 고양이까지 모두 눈에 불을 켜고 밤낮없이 고양이들을 감시한다. 생선가게 고양이들에게는 다른 가게, 이를테면 고무신가게 고양이나 대장간 고양이들에 비해 엄격한 윤리규정이 적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사고가 난다. 생선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갖가지 기기묘묘한 수법이 동원된다.
가장 고전적인 방식은 생선을 넣어두는 냉동고의 번호 자물쇠의 비밀번호를 알아내어 냉동고를 열고 생선을 입에 물 수 있을 만큼 최대한 훔쳐가지고 멀리 달아나는 것이다. 같이 근무하는 암코양이가 동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럴 때는 보통 애틋한 춘사(椿事)가 개재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자리에서 말하기는 뭣하니까 주간신문 <고양이의 일요일>이나 월간 <주부 고양이> 같은, 고양이미장원에 흔한 잡지를 참고하기 바란다. 어떤 힘 좋은 고양이는 생선을 운송하는 차를 뒤따라가 운전사의 뒤통수를 치고 차를 입에 물고 튀기도 한다. 근래에는 이중삼중으로 되어 있는 자물쇠 번호를 알아내어 바깥의 브로커 고양이와 짜고 전화와 인터넷까지 이용하여 생선을 수십 상자씩 훔쳐내는 고등수법이 동원되고 있다.
생선을 훔쳐낸 대부분의 고양이는 잡히게 된다. 그건 이제까지의 검찰 통계가 분명히 말해준다. 또 바보가 아닌 한 생선을 훔쳐내는 고양이들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생선을 훔치고 잡힌 고양이들의 운명은 고양이들의 숫자만큼 각양각색이다.
연전에 ‘큰물어물전’의 대리, 과장, 부장이 나란히 생선을 훔쳐낸 적이 있었다. 젊고 대담하고 실행력이 뛰어난 대리 고양이는 꽁치 200만 마리, 부장 고양이는 도루묵 60만 마리, 중간에 있는 과장 고양이는 밴댕이 15만 마리를 훔쳤다. 세 고양이가 잡혔을 때 가장 마릿수가 적었던 과장 고양이는 처음부터 계속 얻어터지면서 더불어 욕을 먹고 경멸당했다. 부장 고양이는 도루묵 60만 마리를 토해낼 때까지 꽤 시달렸지만 그래도 과장 고양이보다는 덜 혼났다. 대리 고양이는 공항 출입국 관리소에서 붙잡혔는데 애인과 함께 ‘말일세’(末日世)라는, 이민으로 이루어진 나라에 투자 이민을 가던 중이었다. 말일세는 투자 이민의 자격을 꽁치 100만 마리로 정해두고 있었다.
대리 고양이는 검찰에 체포될 때는 물론이고 검찰로 압송이 되어와서도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일단 훔친 생선의 소재를 파악해서 회수하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에 검찰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것이다. 대리 고양이는 검사가 준 고급 여송연을 피우면서 변호사 없이는 입도 방끗하지 않겠노라고 담배연기로 선언했다. 당장 대법관 출신으로 최고의 명성을 떨치고 있는 변호사가 달려왔다. 숨바꼭질과 줄다리기 끝에 대리 고양이는 50만 마리의 꽁치가 있는 냉동창고의 소재를 알려주었다. 그 대신 법정 최저형량인 금고 1년형이 선고됐고 1년 뒤에 석방되어 예정한 대로 투자 이민을 떠났다. 과장 고양이는 밴댕이를 몽땅 물어내고도 국선변호인밖에 선임할 수 없어서 징역 5년을, 도루묵을 반가량 토해낸 부장 고양이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아직 복역 중이다.
그리하여 오늘도 생선가게 고양이들 사이에서는 “기왕 저지를 거면 화끈하게…” 하는 수군거림이 그치지 않고 있다(우리 인간의 속세에서 2002년 한해 동안 은행권 금융사고 내역을 잠정집계한 결과 223건, 2435억원으로 나타난 바, 전년에 비해 건수는 12건 줄었으나 금액은 984억원이 늘었다. 은행권 출신자 중 미국 투자 이민은 몇이나 되는지, 그게 나는 궁금하다). 성석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