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형 감독은 마흔세살이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수완과 지훈이 스물한살이니, 그는 자기 나이의 절반도 안 되는 아이들이 싸우고 연애하는 이야기로 첫 번째 영화를 만든 셈이다. 경험만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법은 없겠지만,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는지라 이 나이먹은 신인감독은 물론 걱정이 많았다. “본격적인 청춘영화라… 내 나이가 벌써 몇인데.” 그러나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토닥토닥 치고받는 경쾌한 대사와 단 한 장면에도 미련을 남기지 않으면서 빠르게 종종걸음치는 전개로 공감을 얻어 개봉한 지 3주 만에 전국관객 300만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는 점과 독특한 캐릭터 때문에 <엽기적인 그녀>와 자주 비교되는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2년 꿇은데다 방자하기 그지없는 문제적 고등학생 지훈과 한 학기 등록금이 아쉬워 지훈에게 도전하는 과외선생 수완이 이끄는 코미디. 이 영화는 “진실성이 없다”거나 “청춘이 그런 것만은 아닐 텐데”라는 비판과 함께 젊은이들의 감성을 놀랄 정도로 밀접하게 따라붙었다는 칭찬을 동시에 얻었다. 그 자신의 설명대로 “젊어 보인다기보단 철딱서니없어 보이는” 외모와 행동을 지닌 김경형 감독은 “첫 번째 영화에서 내 모든 걸 보여줄 순 없지 않겠나”라는, 약간은 속편한 대답으로, 일단 흥행에선 뿌듯한 성공을 거둔 자신의 데뷔작을 옹호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예상보다 훨씬 좋은 흥행성적을 올렸다. 축하인사를 많이 받을 것 같다.
→ 뭐, 별로 그렇진 않다. 평소 덕을 쌓지 못해서. (웃음)
영화만 봤을 땐 감독이 이 정도로 나이가 많을 줄은 몰랐다. 너무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라서 부담스럽진 않았는가.
→ 내가 한 건 요즘 아이들 듣는 CD를 항상 들은 정도? 그래도 뒤처지지 않은 까닭은, 난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어놓기 때문이라고 하고, 집사람은 철이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웃음) 원작과 시놉시스를 받고 삼일 동안 고민하긴 했다. 처음 원작을 읽고나선 이게 어떤 영화가 될까, 영화가 되긴 할까, 걱정됐고, 내 나이가 몇인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코미디라는 장르가 자신없기도 했다. 하지만 데뷔작으론 가벼운 영화가 좋겠다 싶었다. 드라마에 승부를 걸고 시나리오를 쓰면 괜찮을 것 같았고. 찍다보니 내 안에 코미디와 잘 맞는 부분이 있다는, ‘발견의 기쁨’도 겪었다.
캐릭터나 이야기가 원작과 상당히 다르다. 어떤 변화를 주었는가.
→ 원작엔 캐릭터라고 할 만한 게 아예 없었다. 대신 원작자 최수완의 문체가 독특했다. 발랄했고, 자극을 받았을 때 움츠러드는 대신 팍 치고 일어나는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그런 느낌을 살려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수완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지훈은 많이 달라진 경우다. 원작엔 사마귀처럼 눈도 찢어지고 얼굴도 길다고 나오는데 잘생긴 부잣집 자식으로 바꿨다. 지훈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유를 권태로 잡았다. 권태는 원하는 모든 걸 가질 수 있지만, 살아가는 목적이 없는 아이의 특징이 아닐까. 지훈이 말수가 적은 것도 세상과 문을 닫은 아이로 설정한 탓이다. 그렇게 캐릭터를 만들고나니 드라마가 필요했다. 지훈이 가출하고 수완과 맺어지는 부분은 원작엔 없다.
앞서 드라마에 승부를 걸었다고 말했지만, <동갑내기 과외하기>엔 느닷없는 장면들도 있다. 지훈을 짝사랑하는 동급생 호경이 술마시는 지훈과 수완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장면이 그렇다.
→ 남자를 정말 좋아하면 다 그렇게 된다. (웃음) 방송작가로 드라마를 쓰면서 우연은 세번까지 용서가 된다고 느꼈다. 그래서 열심히 썼다. 우연이 몇번이나 되는지. (웃음) 사실 신경을 안 쓴 건 아니다. 수완의 집안 형편으로 보면 지훈을 강북으로 불러내서 술을 마셔야 했겠지만, 지훈을 찾아 헤매는 호경 눈에 띄는 장소여야 했다. 그래서 압구정동 실내포장마차를 섭외해서 찍었다.
수완은 지훈과 계급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인 형편이 차이나는 데도 그 간격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 그런 문제를 생각하면 또 다른 층의 이야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의식하지 말자고 결정했다. 수완이 지훈 집에 처음 찾아가는 장면에서 그 아이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김하늘과 의논을 했다. 그냥 씩 웃자고 합의를 봤다. 나는 한 학기 등록금 구하려고 너네 집에 와서 과외를 한다. 너는 이만큼 잘사는구나. 근데 그게 어때서? 이런 표정으로. 세상을 바꾸는 힘도 어쩌면 그런 태도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그 안에도 분노는 있는 거다.
김하늘과 권상우는 그렇게 연기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선 캐릭터와 잘 맞는 연기를 보일 뿐 아니라 호흡도 잘 맞는다.
→ 권상우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아는 배우다. 그만큼 노력을 한다. 초반엔 경직돼 있었지만, 세트 촬영에 들어가니 애드리브도 늘었다. 김하늘에게 “내 아를 나도” 하고 소리지르는 건 권상우의 애드리브였는데 그대로 살려줬다. 김하늘은 좀 다독였다. 내가 수완이에게 이메일을 쓰는 것처럼 “수완아, 오늘은 잘 지냈니. 지금 밖에 비가 오는데 닭 배달은 잘했는지 모르겠구나” 하면서 메일을 보냈다. 그게 좋았던 모양이다. 사실은 두 사람이 워낙 친해져 내 역할이라고는 사소한 조율이 전부였던 것 같다. 난 연출하는 사람은 배우를 사랑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이를 먹어서 그럴 수 있는 것 같다. 이 나이에 데뷔한 게, 난 참 좋다.
경력이 참 다양하다.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언제부터였는가.
→ 아주, 아주 오래 전부터. 서울극장에서 <대부>를 보고 필이 꽂혀서 재개봉관까지 쫓아다니며 서른번도 넘게 봤던 게 영화를 처음 하고 싶었던 때다. 그랬는데 이번에 서울극장 간판에 내 이름이 떡 하니 써 있어서 너무 기뻤다. (웃음) 하지만 대학에선 영화를 할 수 없었다. 내가 다니던 경희대엔 영화과가 없었다. 제대하고 나니까 영화 동아리가 생겼더라. 영화평론가 이효인씨가 창단멤버여서 믿고 찾아갔는데 그분은 없고 애들만 서클룸에 있었다. 그애들이 복학생은 안 받아준다고 했다. 그래서 8mm 카메라와 영사기를 샀다. 학보사 기자했던 고학번들한테 장학금 주는 게 있었는데 집에는 말 안 하고,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그 장학금으로. (웃음) 그 카메라로 무지 많이 찍었다. 가투며 연극공연이며 다 찍다가 방송사에 특채로 들어갔는데, 재미없어서 도저히 못하겠더라. 들어가자마자 8·15 특집극 찍는데 쫓아다니다가 더위 먹어서 입원까지 했다. 그래서 그만두고 나왔다.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조감독으로 영화 경력을 시작했다. 그뒤 한참 공백이 있다.
→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는 인맥이 참 재미있었다. 김성홍 감독에 각본은 강제규, 배우로는 이범수, 공형진, 연출부엔 <단적비연수> 박제현 감독도 있었다. 근데 그 사람들이 전부 중앙대 출신이었다. 그 사이에 끼어서 무지 외로웠다. 자기들끼리 농담을 하긴 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고. (웃음) 그렇게 영화를 끝내고 나니까 전망이 너무 불투명했다. 사람들도 못 믿겠고, 막 직배가 시작되던 때라 산업적인 기반도 불안정했다. 도대체 언제나 기회가 올까 막막한 심정에 환경마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방송사에서 일할 땐 그 무렵에도 텔레시네가 있었다. 그런데 충무로에 오니까 편집실 바닥엔 담뱃불 구멍투성이고 바퀴벌레가 막 기어다니고…. 편집할 땐 영사기로 벽에다 화면을 쏘는 거였다. 심지어 영화하겠다면 금치산자 취급하는 분위기까지 있었다. 여자친구도 도망가고. (웃음) 유학도 고려했지만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CF 연출을 시작했다. 잘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다보니 건방이 들어서 독립제작사를 차렸는데 6개월 만에 망했다. 그냥 혼자 시나리오나 쓰고 있는데 친구인 오종록 PD(<피아노> 프로듀서, 영화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촬영 중)가 전화해서 혹시 괜찮은 작가 없냐고 물어봤다. 있다, 누구냐, 나다, 그랬다. (웃음) 그렇게 방송작가를 시작했는데, 연예인들이 술도 자주 사주고 내가 쓴 대로 드라마를 찍고 그러니까 그 달콤한 맛에 한참을 빠져 있었다.
굳이 영화로 돌아온 까닭은 뭔가.
→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항상 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영화가 너무 하고 싶어서, 시기를 놓치면 영영 못할 것 같아서, 97년에 작가일을 완전히 접었다. 정말 돈이 없을 때만 간간이 대본을 썼다.
그뒤 5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인데 어떻게 버텨왔나.
→ 영화가 몇편 엎어지다보면 5년, 금방 간다. (웃음) 시나리오를 쓰고 사람들을 설득하다가 프로젝트가 무산되면 1년이 훌쩍 가 있었지만, 그 1년의 하루하루는 무척 고달팠다. 영영 데뷔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건 거의 공포에 가까웠다. 주변엔 정신병원에 간 사람이 있을 정도다. 영화제작 환경은 급속도로 변하고 소재도 날마다 새로워지는데, 나는 한번도 나 자신을 입증하지 못하고 밀려나는 게 아닐까, 영원히 잊혀지는게 아닐까 두려웠다. 하지만 꿋꿋하게 견뎠다. 힘들어질 땐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를 즐겨 부르면서(웃음) 자기 최면을 열심히 걸었다. 혼자가 아니었다는 게 가장 큰힘이 됐다. 곁에서 지켜봐 주고 믿어주는 가족이 있었으니까.
마음에 두고 있지 않던 장르, 마음에 두고 있지 않던 영화로 시작했다. 만족하는가.
→ 감독이 어떤 영화를 택할 때는 그 장르가 적용하는 룰에 맞추겠다는 의지가 있는 거다. 지훈과 수완의 마음속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할 수 있는 데도 안 했다는 변명은 필요없을 것 같다. 주어진 일정, 조건, 장르 안에서 나는 최선을 다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절대 감상적이어선 안 되는 영화였고, 사랑이 막 시작되려는 쿨한 느낌에서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영화였다. 그 이상의 뭔가를 하고 싶었다면 다른 영화를 해야 했을 거다.최소한으로 잡은 목표는 가짜 휘발유나 불량식품은 만들지 않겠다는 거였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고 즐거워하면, 그것으로 행복하다.글 김현정 parady@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