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쌍둥이 꼬마 악마가 숲 속 작은 집에서 엄마, 아빠, 할머니와 살고 있다. 악마인 할머니는 천사인 할아버지와 사랑에 빠졌었단다. 어느 날 자는데 구름 나라에 계신다는 할아버지가 너무너무너무 보고 싶어졌다. 당장 만나러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서로서로 도와 몰래 창문을 넘어간다. 밖은 깜깜한 숲이다. 혼자서는 무섭지만 모두 함께니까 괜찮아. 손을 꼭 잡고 단호한 표정을 지어 보지만 밤마실 나온 늑대 울음 소리에 혼비백산 줄행랑이다.
<XI5>(‘사이 사이고’라고 읽는다)는 퍼즐 게임이다. 소니가 운영하는 게임 스쿨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팀을 만들어 제작한 1편 이래 지금까지 5편이 나왔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XI5>는 플레이스테이션의 위상을 보여주는 게임이다. 왜냐하면 90년대 중반 이후 게임에서 가장 중요하게 부각되는 코드가 가장 분명한 형태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게임은 하는 사람이나 하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고 밸런타인이고 방구석에 처박혀 게임기 패드를 움켜쥐고 지내는 마니아들에게 지나치게 쉬운 게임은 환영받지 못했다. 한번 막혔다 하면 꼬박 하루는 연습해야 통과할 수 있는 아크로바트 같은 게임들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플레이스테이션이란 새로운 기계다. 이제 게임은 최신작을 가장 먼저 구입하기 위해 매장 앞에서 담요를 쓰고 밤을 새우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참치 마요네즈 삼각김밥에 곁들여 게임 타이틀을 사가는 사람들을 겨냥한 게임기였다. 게임은 수많은 멀티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중 하나일 뿐이지 불멸의 순애보를 바쳐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한번 붙잡으면 200시간은 우스운 게임, 한 시간은 해봐야 어떻게 해야 할지 간신히 감이 잡히는 게임은 영화나 만화나 뮤직비디오에 밀려버린다.
‘라이트 앤드 펀’(Light & Fun). 할아버지를 찾아 나선 가출 꼬맹이들 앞에는 주사위 퍼즐이 놓여 있다. 스테이지 하나 끝내는 데 10분이면 충분하니 일부러 시간낼 것 없이 틈틈이 하면 된다. 무미건조하게 주사위를 던지는 게 아니라 깜찍한 캐릭터들이 짧은 팔다리를 휘두르며 주사위를 굴리고 다닌다. 옆에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귀엽다. 허우대만 멀쩡한 것도 아니다. 성공한 퍼즐 게임치고 룰이 복잡한 것은 없다. 5분이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룰이지만 하면 할수록 심오하고 재미있어야 좋은 퍼즐 게임이다. <XI5>가 바로 그렇다.
같은 눈의 주사위들을 그 눈 크기만큼 붙여놓으면 불이 붙는다. 불이 붙은 주사위를 폭발시켜 적을 물리치고 나아간다. 폭발 범위 안에 같거나 하나 작은 눈의 주사위가 있다면 연쇄적으로 불이 붙는다. 스테이지를 하나 끝내면 점수가 나온다. 적을 모두 해치우지 않아도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수 있다. 처음에는 앞뒤 가릴 것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도 바쁘지만, 막상 끝내면 다시 도전해 퍼펙트 스코어를 올려야겠다는 욕심이 난다. 찔끔찔끔 점수 따는 데 집중할 게 아니라 큰 거 한방을 노리는 화려한 콤보 플레이를 보여주고도 싶다. 인터넷 랭킹에 도전하는 마약 같은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10분씩 열 번, 백번을 하다보면 하루 해가 훌쩍 지나간다.
라이트 앤드 펀. 시간낭비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영화 열편, 문자 메시지 천개보다 훨씬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XI5>의 귀여운 꼬마 악마들은 강하다. 그 어떤 무서운 멀티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와 맞서서도 이길 수 있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