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원TV 일요일 밤 10시, 금요일 밤 12시(재방)격주로 방송
만화 <공각기동대>는 극장판으로 만화영화화되었고, 그 다음 TV판으로 만화영화화 되었다. TV판은 극장판이 원작 팬들에게 부지기수로 원성을 들었던 것을 콤플렉스 급으로 의식하고 있다. 부제부터 ‘스탠드 얼론 콤플렉스’(하하, 농담). <공각기동대>의 원작자 시로 마사무네는 극장판에서 못했던 것을 해보자는 듯이 최첨단 애니메이션기법을 총동원하여 원작과도, 극장판과도 사뭇 다른 미래를 구축해나가려 한다.
그러나 TV판 <공각기동대>는 최첨단 기법으로 화려한 내공을 선보이지만, 이전의 만화판도 영화판도 아닌 어정쩡한 가운데에서 헤매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영화판의 팬들보다 원작만화의 팬들을 인식했다는 시로 마사무네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느릿한 드라마의 톤은 원작보다는 극장판에 가깝다. 가장 어정쩡한 요소는 주인공 쿠사나기인데, 모습은 만화쪽에 가까운 편이고 행동거지는 극장판에 가깝다. 어찌나 안 어울리는지 드라마 몰입을 방해할 정도이다. 쿠사나기가 등장하면,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립글로스의 압박을 실현하는 입술과 그 극악한 패션감각을 보다보면 도대체 무슨 의도로 쿠사나기를 디자인했을까 하는 생각에 이야기가 눈에 안 들어온다. 남들은 폴라티셔츠를 입는 날씨에, 다른 여자들은 얌전한 무릎선 치마만 입고 다니는 와중에, 쿠사나기 혼자 화려하게 립글로스를 반짝이며 허벅지와 엉덩이를 다 드러내는 팬티만 입고 전뇌공간의 고뇌를 하고 다닌다.
2003년이라는 시대에 따라 발전한 그래픽 기법이 총동원되었고, 원작자 시로 마사무네가 제작을 담당했고, <인랑>의 감독 가미야마 겐지가 덤벼들었고, <카우보이 비밥>의 간노 요코가 음악을 맡은 이 지상최대의 최첨단 작전에 비해서 쿠사나기라는 드라마의 핵심은 한마디로 ‘삐리리’하다. 성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립글로스 광채, 다른 캐릭터와 차별화를 시도하는 극악한 팬티, 모두를 압도하는 과묵함. 발랄했던 원작과 진지한 극장판 양쪽을 포괄하는 주인공을 만들고 싶었나보지만,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정적인 파워를 지니는 드라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도대체 쿠사나기를 왜 저렇게? 차라리 그 립글로스 압박이 어울리는 발랄소녀로 만들 것이지! 고뇌는 왜 하나?! 여주인공 외양에 혹해서 작품을 보는 시청자층을 위해 드라마의 통일성을 망가뜨렸다고는 믿고 싶지도 않을 정도이다.
너무나 당연해서 잘 안 하는 이야기지만, 이 세상은 머리와 가슴이 같이 발전해야 진정한 최첨단이 되는 것이다. 최소한 같이 보조를 맞춰줘야 한다. 그리고 기법과 감수성 모두 시대를 앞서나가는 비전이 있어야 한다. 이 감수성면에서 TV판은 결정적으로 감점을 받는 것이다. 서로 평가가 엇갈린다 뿐이지 <공각기동대>의 경우 만화판과 영화판은 독자적인 나름대로의 최첨단 세계를 서로 방향만 다를 뿐 통일성 있게 구축하고 있다. 만화 속의 발랄한 쿠사나기와 영화 속의 과묵한 쿠사나기는 완전히 달라 보이지만 각 작품 안에서는 하나의 톤, 스타일로 묶인다. 이런 기본을 잊어버린 TV판 <공각기동대>는 모든 장점을 단점 하나에 함몰시켜버린다.
엄청난 자본, 뛰어난 연출력, 호소력 있는 이야기, 최첨단 기법의 결정체 등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TV판 <공각기동대>는 자꾸 비교 격하만 당하는 불운을 맞이하게 된다. 이것은 단지 불운인가? 사실 자초한 셈이다. 아니면 시로 마사무네의 여성관이 그것밖에 안 되던가. 경호한답시고 입은 A라인 스커트 경찰복은 순전히 날아다닐 때 팬티 보여주려고 입힌 것이 틀림없으니까. 매커닉이 발전한 만큼 옷도 발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정상이다. 그 ‘빤쭈’는 기묘한 차별주의다. TV시리즈 <엔젤>에서 엔젤이 더운 LA에서 가죽코트를 휘날리며 다니는 것은 ‘엔젤은 (흡혈귀라서) 더운 줄을 모르니까’이다. 그런데 왜 쿠사나기는 남들은 터틀넥을 입고 다니는 날씨에 ‘빤쭈’만 입고 다니는가? 답은 ‘쿠사나기는 (몸이 기계니까) 추운 줄 모르니까’인 것이다. 똑같이 몸이 기계라는 바트가 뭘 입는지만 봐도 된다. 쿠사나기만 어정쩡한 것은 아니긴 하다. 드라마 자체가 기법 혹은 기술의 발전에 비해 마인드 자체는 아직도 80년대에 머물러 있다.
TV판 <공각기동대>의 어정쩡함은 어찌나 심한지, 심지어 간노 요코의 음악마저 좋기는 하지만 남다르거나 새롭게 들리지는 않는다. 일본 극장판 음악과 스타일이 다른 음악을 선택하기는 했는데, 불행히도 미국판 <공각기동대> 엔딩 타이틀 <One Minute Warning>과 비슷한 스타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보면 자꾸 무뎌지는 것이 사람의 눈? 다행히 계속 보다보니 이야기의 아우라, 다시 말해 시로 마사무네의 전뇌공간은 여전히 매력있기 때문에 ‘빤쭈’와 ‘립글로스’를 가끔은 잊는 데 성공했다. 이제 반 정도 보았으니 나머지 반의 건투를 기원한다. 아자!남명희/ 자유기고가 zoo@zootv.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