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두 거장
빅토르 쇠스트롬과 모리스 스틸러의 영화세계
스웨덴영화의 두 거장, 빅토르 쇠스트롬과 모리스 스틸러를 아는지? 전후 해외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이들은 이미 1910년대 초부터 꾸준한 수작들을 만들어왔다. 그들의 영화는 미국이나 프랑스영화와는 다른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미학적 특징을 보여줘서 이채롭다. 빅토르 쇠스트롬과 모리스 스틸러는 둘 다 연극 무대에서 먼저 명성을 얻은 뒤에 영화에 입문했으며,
스벤스카영화사에서 감독, 연기, 각본을 동시에 겸하고 있다. 또한 스웨덴의 여성소설가 셀마 라아게를뢰프의 소설을 줄곧 영화화해왔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빅토르 쇠스트롬은 인간의 내면심리를 깊이 통찰해온 감독이다. 그의 최근작인 <유령 마차>(1920)는 이를 잘 보여주는 영화. 새해 이브에 죽어가는 술취한 시골뜨기가, 사신이 모는 유령마차를 타고 자신을 사랑했던 두 여인을 그가 어떻게 망쳐놓았는가를 보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에는 단 4명만이 출연하며 어떤 극적인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다.
쇠스트롬에게 문제가 된 것은 내적인 갈등이었는데, 타락하기 쉬운 인간의 속성은 결국 구원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몹시 어둡다. 세계대전의 종결 뒤 쇠스트롬을 해외에 알린 <무법자와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 사랑에 의지해 모든 것을 버리고 황야에서 살아가는 주인공 부부는, 그러나 죽기 직전 치졸하고 추한 싸움을 벌인다. 한때 서로 깊이 사랑했으나 배고프고 추위에 지친 두 사람이 악다구니처럼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기란 정말 끔찍하다.
프랑스 비평가 루이 델뤽은 이 영화를 “놀라운 작품”이라고 상찬하며 이렇게 말했다. “감정의 예리한 서정성과 끔찍함, 폭력적인 싸움, 사막처럼 황폐한 눈 위에서 최후의 포옹을 하면서 삶에서 달아나버린 두 연인의 비극적인 결말을 보고 프랑스 관객은 충격받았다.”
모리스 스틸러는 센세이셔널한 멜로드라마 <블랙 마스크>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실 그의 초기작들은 신통치 않아서 개봉 전 몇년씩 창고에 처박혀 있기도 했다. 이어 그는 ‘최초의 세련된 섹스 희극영화’라는 홍보카피가 달린 영화 <에로티콘>(1920) 등 주로 희극영화에서 장기를 보였다. 하지만 스틸러의 최고작으로는 희극이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 스웨덴을 배경으로 한 비극 <아르네 경의 보물>(1919)이 꼽힌다. 대학살의 유일한 생존자인 여성이 남자가 학살의 주범이라는 걸 모른 채 사랑에 빠진다. 남자 역시 여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도망치기 위해 여자를 방패막이로 이용하고 결국 여자는 죽는다. 폭력과 처벌에 관한 이 도덕적인 이야기는 불길한 예감, 스웨덴 시골의 뛰어난 정경 등에 둘러싸여 그로테스크한 비극의 분위기를 풍긴다. 이 영화 역시 <유령 마차>처럼 라아게를뢰프의 소설을 영화했다.
윌 헤이즈 인터뷰“배우 사생활, 대중에 영향 크다”
1922년 미국 정부의 검열을 피하고 추락한 할리우드의 이미지를 일신하기 위해 주요 스튜디오들이 일종의 동업조직인 영화제작자 및 배급업자협회(Motion Picture Producers and Distributors Association·이하 MPPDA)를 설립하고, 전 공화당전국위원회 의장인 윌 헤이즈를 회장에 임명했다. 과연 그는 할리우드의 도덕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어떠한 복안을 가지고 있는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의외의 인사처럼 보인다.
난 공화주의자이고 독실한 장로교도다. 워싱턴 정가에 발도 넓다. 영화를 불신하는 대중과 정치인들을 안심시킬 수 있다. 그러면 정부 검열의 도입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에 대한 진단은.
지금 할리우드는 위기에 처해 있다. 전쟁이 끝난 뒤에 사회는 성적, 도덕적으로 개방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금주법이 있긴 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나. 할리우드영화들은 이런 사회 분위기에 영합해 밀주, 재즈, 난장파티 같은 소재들을 다뤄왔다. 그뿐인가? 아직 재판 중이긴 하지만 유명 코미디언 패티 아버클이 취중 파티 중에 여배우 버지니아 라프를 강간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렇듯 배우들은 문란한 사생활로 대중의 신의를 잃어가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대중이 할리우드를 고운 눈으로 보지 않는 건 당연한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계획은.
자정 노력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제작자들이 사생활에 문제가 있는 배우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것을 도울 예정이다. 또 ‘하지 말아야 할 것과 조심해야 할 것’을 정하고 모든 시나리오의 시놉시스를 제출받아 승인 여부를 가릴 것이다.
박스2/ 러시아로 간 <인톨러런스>자본주의의 냉대, 공산주의의 환대
잠깐 퀴즈. 1922년 현재 소련영화사에서 대중성과 정치성, 예술성에서 동시에 성공을 거둔 최초의 걸작은? 놀라지마시라. 답은 데이비드 G. 그리피스의 <인톨러런스>다.
<인톨러런스>는 혁명 전인 1916년 러시아에 수입됐다. 하지만 배급업자들이 내용의 난해함을 이유로 상영을 거절하는 바람에 창고에 박혀버렸다.
그러다 혁명 뒤, 이 영화의 ‘선동성’을 알아본 볼셰비키 정부가 1918년과 1919년 페트로그라드와 모스크바에서 각각 프리미어를 열면서 다시 빛을 보게 됐다. 레닌은 특히 <인톨러런스>의 ‘모던 스토리’에 깊이 감명을 받았다. 네 가지의 이야기를 교차편집한 <인톨러런스>에서 ‘모던 스토리’는 농장에서 해고된 노동자가 도시 갱조직에 들어가지만 같은 노동계급의 여성을 사랑하게 되면서 과거를 청산하고 새 삶을 시작한다는 이야기. 그는 조직의 음모로 살인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를 받게 되지만 진실이 밝혀지면서 가까스로 죽음에서 구출된다.
레닌이 전국 상영을 지시한 이래 이 영화는 1922년 현재까지 러시아 전역에서 상영되고 있다. 또한 레닌은 그리피스에게 영화산업의 수장자리를 제의했다. 하지만 자신의 스튜디오 개관을 앞두고 있던 그리피스는 이를 거절했다. <인톨러런스>에 반한 건 레닌만이 아니다. 미국의 몽타주에 관심이 컸던 쿨레쇼프는 워크숍에 참가한 학생들과 함께 이 영화를 수없이 보고, 프린트를 잘라 수백 가지 방법으로 재조합해보았다. 그리피스의 편집방법을 이해하고, 나아가 숏의 정렬이 의미를 생산하는 과정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이렇듯 미국에서 냉대받은 <인톨러런스>는 미국과 정반대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나라에서 환대받고 있다. 묘한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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