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시도를 입은 국가 공인 스파이가 광란의 콘서트장에서 죽는 것으로 시작해, 처음부터 끝까지 ‘007 뒤집기’를 시도한 <트리플X>를 통쾌하게 봤다. 뭔가 심오한 복선이 있는 척하다 실망감만 배가시키던 기존의 스파이물과 달리 아예 처음부터 익스트림 스포츠를 접목시켜 오락성 한 가지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락성이 듬뿍 강조된 영화였기 때문에 DVD 타이틀에 대한 기대는 상대적으로 정형화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막상 출시된 타이틀에 예상치 못했던 색다른 매력이 들어 있었다. 그 중 첫 번째는 서플먼트를 통해 부각되는 롭 코언 감독의 모습이다.
코언은 서플먼트 전반에 걸쳐 영화 속의 젠더 케이지만큼 ‘쿨’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그가 남긴 삭제장면의 코멘터리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R 등급을 받을 것 같아 아예 야한 장면들을 많이 찍어놨었다. 극장 개봉 때는 그 장면들이 잘려나갔지만, 돈을 주고 DVD를 사는 고객을 위해 팬 서비스로 넣어놨으니 천천히 즐겨보라’는 식의 다소 황당한 멘트를 천연덕스럽게 날리는 것.
더불어 82일간의 촬영일지인 ‘A Filmmaker’s Diary’ 또한 대단히 감각적으로 연출되어 있어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영화 제작과정에서의 다양한 뒷이야기와 스탭들의 인터뷰를 모아놓은 이 코너는, 주연인 빈 디젤과 아시아 아르젠토를 거의 다루지 않고 있는 것이 특징. 주연배우들의 뻔한 이야기가 아닌 익스트림 스포츠를 실제로 하는 인물들, 효과적인 액션장면 촬영을 위한 다양한 장치, 2천컷이 넘는 촬영 뒤 강행되었던 편집과정, 액션을 살려주는 음향효과 등 오락 액션영화로서 <트리플X>에 대해 관객이 궁금해했을 법한 것들만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많은 장점들에 비해 한 가지 단점은, 바로 본편 영화가 기대만큼의 진하고 선명한 색감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체코의 프라하가 음습하고 우울하게 보일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다소 바랜 듯한 화면은 역시 흥을 감소시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장 기대했던 스노보딩 장면의 경우 하얀 눈의 밝기 때문에 극장에서 느꼈던 생동감을 즐기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스노보드의 플레이트가 살짝 언 눈을 긁으면서 내려가는 섬세한 소리까지 정교하게 작업한 사운드의 힘이 뒷받침된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를 이미 본 사람들에게 <트리플X> DVD는 영화를 다시 즐기는 데 유용하다기보다는 범상치 않은 감독이 확실하게 보여주는 감각적인 화술을 곳곳에서 발견하는 데 유용할 것이 분명하다.
XXX Special Edition, 2002년
감독: 롭 코언
자막: 영어, 한국어, 중국어, 타이어
화면포맷: 아나모픽 2.40:1
오디오: 돌비 디지털 5.1
지역코드: 3
출시사: 콜럼비아
김소연/ DVD 칼럼니스트 soyoun@hipo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