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os: Gardel’s Exile1986년, 감독 페르난도 솔라나스 출연 마리 라포레 EBS 2월15일(토) 밤 10시
육체로 시를 쓰다
같은 지면을 통해 솔라나스 감독의 영화를 소개했던 기억이 있다. <남쪽>과 <구름> 등의 영화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솔라나스 감독에게 특별한 애정이 있다. 그의 영화는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무엇’을 스크린에 풀어놓는다. <남쪽>에서 거리의 악사들이 희미한 안개에 싸인 채 구슬픈 멜로디를 연주하고 <구름>에서 아르헨티나 현대사를 ‘퇴행’의 움직임을 하는 행인에 비유하는 장면은, 숨막힐 정도다. <탱고, 가르델의 망명> 역시 압도적인 비주얼을 간직하고 있다. 카메라가 멀리서 도심에 위치한 어느 다리를 포착한다. 인적없는 다리엔 연인으로 보이는 한쌍의 남녀가 있다. 무엇을 하는 걸까? 격정적으로 탱고에 몰두하고 있다. <탱고, 가르델의 망명>은 탱고를 통해 음악과 문학 등 아르헨티나의 문화적 유산을 영화 매체와 접목한 수작이다.
영화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아르헨티나 사람들 이야기다. ‘탱고의 아버지’라 추앙받는 카를로스 가르델의 생애를 다룬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인 후안은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아르헨티나를 떠나 프랑스로 온다. 그곳에 있는 마리아나와 그녀의 가족은 오랜 망명생활에 지쳐 있으며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헤라르도는 감옥에서 태어난 손녀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애쓴다. 망명자들은 자신의 슬픈 사연과 설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뮤지컬을 준비한다. 그들에게 카를로스 가르델은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현재를 상징하는 인물인 것이다.
<탱고, 가르델의 망명>은 <남쪽>(1988)과 더불어 솔라나스 감독의 대표작이다. <남쪽>과 마찬가지로 <탱고, 가르델의 망명>은 영화 서사가 독창적으로 짜여진다. 특정 장르어법에 의존하는 대신 서사구조의 해체를 통해 신선한 쾌감을 관객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두 영화 모두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음악을 담당했다. 피아졸라는 탱고음악의 현대화에 앞장섰던 인물로 탱고에 현대음악과 재즈의 문법을 도입한 것으로 거론되곤 한다. 피아졸라의 음악은 비장하면서 격정적이며, 형식적 체계가 있으면서 또한 자유분방한 탱고음악의 세계를 열어 보인다.
다른 솔라나스 영화에 비해 <탱고, 가르델의 망명>은 안무의 중요성이 눈에 띈다. 무용수들은 마네킹 등 소품을 응용해 다양한 동작을 선보이고 있으며 탱고라는 춤이 얼마나 인체의 아름다움을 극단적으로 과시할 수 있는지 예증하고 있다. 또한 무대극의 형식을 그대로 옮겨온 영화 구성은 <탱고, 가르델의 망명>이 풍성한 문화적 교양을 중시하는 영화임을 일러준다. “탱고는 시인이 언어로 기술하는 것의 육체적 표현이자 투쟁은 곧 축제라는 믿음의 표현이다.” 보르헤스의 언급은 솔라나스 감독의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지름길이자 탱고의 교리(敎理) 같은 것이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