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에 이른바 ‘명예퇴직’이라는 말이 명예와는 전혀 상관없이 사람들의 목 위를 날아다닐 때의 일이다. 내가 단골로 가던 은행은 지점이 아니고 직원이 청원경찰을 합쳐도 예닐곱명밖에 되지 않는 아담한 출장소였다. 무엇보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어서 가까웠고 조용해서 마음에 들었다. 어느 날 출장소의 소장이라는 사람이 자신들의 출장소를 마음에 들어하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 난생처음 은행창구 안으로 들어가 소파에 앉아 차도 얻어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듣고 하는 특별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단골들도 한두번쯤은 그 소파에 앉는 것 같기는 했다.
고향이 충북 어디라는 소장은 매일 목에 넥타이 졸라매고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부동산업자인 나의 자유가 부럽다고 잠깐 경의를 표하고는 요즘 은행원이 얼마나 파리 목숨인지에 대해서는 한참이나 열을 올려 설명했다. 은행이 합병이 되면서 다시 명퇴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제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40대 후반 차장급들은 몇명 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나도 예의상 맞장구를 치면서 그 나이면 한창 자식들 교육에 돈이 들어갈 때이고 인생에서 자신을 실현할 황금기인데 막무가내로 자르고 또 자르기만 하면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고 흥분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점심을 같이하기로 했고 흥분이 스러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가까운 냉면집으로 향했다.
냉면집은 그날 따라 북새통이었다. 겨우 자리를 잡은 우리가 냉면을 주문하는데 뒤쪽에서 “김 차장!” 하고 은행장, 아니 은행지점장, 아니 은행지점의 출장소 하고도 최고참 소장을 누군가 불렀다. 김 차장의 얼굴은 금방 고객에 친절을 다하는 은행원 특유의 표정으로 돌아갔고 고개를 돌려 부른 쪽을 향했다. 그리고 자신을 부른 그 인물과 몇 마디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다시 고개를 돌린 그의 표정은 뭘 잘못 씹은 듯 그리 명랑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누구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옛날부터 같이 근무하던 직원입니다. 상고 졸업 하고 은행에 입사했을 때부터 제가 고향도 같고 해서 키워줬다면 키워준 직원이죠. 1차 명퇴 때 잘렸습니다. 나같은 사람이 키워준다고 할 정도니 무슨 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상고 출신에 일선 창구에서만 근무했으니 실력이 있다한들 보여줄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제일 먼저 잘린 거지요. 그때 참 많이 울더라고요. 저 붙들고 원망도 많이 했지요. 제가 희망을 주고 또 줘서 이렇게 됐다는 겁니다. 그땐 참 미안했지요.”냉면은 꽤 질겼다. 그는 가위를 사양하고 냉면은 앞니로 끊어 먹어야 제 맛이라면서 말을 이었다.“은행 그만두고 나가서 교외에 나가서 동업으로 을러브호텔을 샀답니다.”
그의 영어에는 새벽 학원영어반에서 공부한 흔적이 강하게 묻어났다. 엘(L)의 발음이며 ‘텔’의 악센트며….
“그때 제가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엄청나게 무리하게 융자를 알선해줬지요. 그 때도 술 마시면서 고맙다고 울던 놈이에요.”
갑자기 욕이 나오는 바람에 나는 놀라 냉면을 끊지도 않고 삼켰다.
“을러브호텔 방이 32개랍니다. 하루 4회전만 하면 2만원씩만 순익을 봐도 256, 을러브에는 휴일도 없으니까 한달에 7680… 6개월 되니까 융자 싹 갚고 1년 뒤에는 을러브호텔이 두개가 되대요. 두개가 네개 되는 데는 8개월, 네개가 여섯개 되는 데는 5개월….”
소장은 고참 은행원답게 시간과 숫자에 무척 밝았다. 나는 그 장본인의 얼굴을 꼭 봐두고 싶었다. 나중에 관상책을 쓸 때 써먹을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는 볼 수 없었고 그 대신 그가 우리가 먹은 냉면값을 계산하고 갔다는 말을 계산대에서 들었다. 짜식이 어딜 냉면 한 그릇으로 때우려고…. 웬일인지 소장은 계속 툴툴거렸다.성석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