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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 게임에도 미래는 있는가?
2003-02-04

컴퓨터게임

노래방에 게임방에 복권방, 솥뚜껑 삼겹살에 찜닭에 와인 삼겹살. 놀고먹는 게 인류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생각이야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지만, 그 구체적 수행방법에는 시류가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아이템이 생겨난다. 어떤 것은 한순간 반짝했다가 사라지고 다른 것은 이후에도 살아남아 새로운 고전의 자리를 차지한다. 집에 가봤자 재미있는 일이라고는 하나 없는 아이들은 물론 동네 일없는 아저씨들의 마음의 고향이었던 오락실은 DDR 열풍과 함께 환골탈태했다. 퍼런 모기장 차양에 매캐한 담배 연기는 사라지고 넓고 쾌적한 공간에 번쩍거리는 새 기계들이 들어왔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얼마 가지 않았다.

오락실이 사라지고 있는 이유를 명쾌하게 정리하기는 어렵다. 가격을 올려서 싫은 소리를 듣는 대신 기판을 건드려 난이도를 올리는 잔머리는 당장은 들어오는 돈을 높였지만 장기적으로는 손님을 잃었다. 점점 더 어렵게 만드는 한편, 유행하는 스타일만 서로서로 베껴 똑같은 게임을 만들어내는 게임회사들도 문제다. 하지만 역시 게임말고도 재미있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는 게 근본적 문제다. 다른 엔터테인먼트 장르와의 경쟁이 쉬운 일이 아니다.

아케이드 게임의 맹주 일본도 상황은 비슷하다. 아케이드 게임 전문 잡지 <아카디아>가 선정한 2002년 인컴(기계당 수익률) 부문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게임은 <더 킹 오브 화이터스 2001>이다. 선정기간이 2001년 10월1일에서 2002년 9월30일까지인데, <더 킹 오브 화이터스 2001>는 2001년 10월 출시되었다. 이 게임이 꾸준한 인기 시리즈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넘어설 게임이 1년 동안 한편도 나오지 않았다는 건 문제다. 현실을 타개할 새로운 게임이 절실하다.

세가가 만든 <월드 클럽 챔피언쉽 풋볼 세리에 A 2001-2002>라는, 제목도 긴 게임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게임의 특징은 캐릭터를 움직이는 플레이에 초점을 맞춘 게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세리에에서 뛰고 있는 선수 하나하나가 카드에 대응된다. 마음에 드는 선수를 골라 덱을 짜듯 배치한다. 진용을 짜고 선수를 구성하는 감독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게임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카드를 교환하는 재미가 있고, 그 과정에서 같은 게임을 하는 사람들끼리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플레이 뒤 결과에 따라 나오는 카드를 수집하는 것도 각별한 맛이다.

코나미가 개발한 <마작 격투 구락부>도 새롭다. 지금까지 나왔던 아케이드용 마작 게임은 실제 마작 게임이 줄 수 있는 성취감이나 승부욕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래서 대신 판친 게 ‘탈의 마작’, 이기면 상대 여성 캐릭터가 옷을 벗는 게임이다. 결과는 마작 게임에 대한 칙칙한 이미지를 한층 더 강화할 뿐이었다. <마작 격투 구락부>는 네트워크 대전을 도입했다. 오락실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사람 대 사람이 게임을 하는 것이다. 탈의 같은 편법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오프라인 마작 못지않게 긴장감이 있고 재미있다. 여기에 전국 랭킹과 승단 시스템까지 있으니 동네 친구들끼리 모여 마작판을 벌이는 것과는 스케일이 다른 경쟁심에 불탄다.

새로운 시도가 오락실의 몰락이라는 대세를 뒤집을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지금이야 참신해 보이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당장은 잘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운영 비용이 너무 높아 수지가 안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게임성을 즐길 수 있다는 면에서 일단은 대만족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