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말 졸업한 것 같지만 한심하게도 나는 최근까지 좋아하는 연예인이 등장하는 꿈을 꾸곤 했다. 시작은 초등학교 때 조용필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 김수철과 고등학교 때 주윤발, 대학교 때 커트 코베인까지 인종이나 분야도 형형색색이었다. 보통은 너무 좋아해서 꿈에 나타났지만 때로는 별로 관심도 없는 사람이 등장해도 운명이겠거니 생각하고 그를 나의 연정 상대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그래도 2년 전이다) 등장해 나의 졸업파티 파트너가 된 사람은 존 쿠색이다. 생전 처음으로, 또 유일하게 영어로 꾼 꿈이었는데 존 쿠색과 달콤한 대화를 영어(라고 생각된다)로 나누며 꿈 와중에 ‘나도 영어가 되는구나’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 꿈으로 인해 존 쿠색은 브래드 피트라는 강력한 파트너를 물리치고 나의 우상 왕관을 썼고 아직 그 왕관은 벗어지지 않고 있다.
독특하게도 존 쿠색에 대한 나의 애정은 한순간 터진 스파클이 아니다. 말하자면 온돌의 아랫목처럼 은근히 피어오른 온기라고나 할까. 한 작품이나 한 장면에서 그에게 매료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브래드 피트가 머리를 쓸어올리며 말에 오르는 장면 하나를 위해 영화가 존재하는 것 같았던 강렬한 인상이 존 쿠색과 함께 떠오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생각해보니 <콘 에어>에서의 존 쿠색이 떠오르기는 한데 그건 전혀 반대의 의미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그에게 “너 약먹었니”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존 쿠색과 샤프하고 강인한 특수형사라니 안 어울려도 너무 심하게 안 어울리는 조합 아닌가.
나는 <브로드웨이를 쏴라> <존 말코비치 되기>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그리고 최근의 <아메리칸 스윗하트>에 이르는 여정을 통해 그를 조금씩 사랑하게 됐다. 이 작품들에서 그의 역할은 각각 달랐지만 내가 보기에 그 역할들을 꿰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단어로 표현한다면 ‘전전긍긍’ 정도가 될까. 욕망은 있지만 용기는 없고, “노”라고 말할 배포는 없으면서 복잡한 머릿속은 정리 못하는 인물. 심지어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등장했던 <아메리칸 스윗하트>에서까지 소심한 히스테리 환자로 등장했으니 후줄근하고 능력도 부족한 인물로 등장했던 <브로드웨이를 쏴라>나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는 말해 무엇하랴.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그리고 약간의 동지애도 가지게 된다. 전에 <씨네21>의 편집장의 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나이가 들수록(켁!) 남자의 소심함이나 여성성 같은 게 섹시하게 느껴진다. 앞의 영화들에서 존 쿠색 같은 인물처럼 말이다. 이전에 읽었던 <프리미어>의 영화지망생의 할리우드 입문기에서 글쓴이는 우연히 존 쿠색의 전화를 받았는데 아무것도 아닌 자신에게 정중하게 대했다고 썼다. 이를 보면 존 쿠색도 자신이 연기했던 등장인물의 기질을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소심한 인간들의 최대 미덕이 예의바르다는 거다. 소심전문가적 입장에서 볼 때 이들은 자기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예의가 바르다.
나는 할리우드영화에 존 쿠색 같은 남자(등장인물)들이 좀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곧 진리인 양 설쳐대는(역으로만 등장하는) 케빈 코스트너 같은 사람들은 빨리 퇴출돼야 한다고 본다. 그건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마찬가지다. 김은형/ <한겨레> 문화부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