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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폭소클럽>을 만드는 사람들
2003-01-22

아마추어가 더 웃긴다

널찍한 무대 위에 한 남자가 걸어 나오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안녕하세요, 사물흉내 개그의 서남용입니다.” 어설프고 어정쩡하기 그지없는 이 남자가 대체 뭘 하려고 하는 건지 어리둥절하기만 한데, 느닷없이 ‘미역’이란다. 웬 미역 남자는 물살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몸을 흔드는 미역을 온몸으로 표현하더니, 관객이 웃을 새도 없이 다음 주제어를 이야기한다. ‘도토리묵’. 심각하고 진지한 그의 태도에 관객의 웃음보가 터지고 만다.

매주 금요일 자정 무렵에 방송되는 <폭소클럽>에 출연해 화장실 변기 속의 휴지, 크리스마스트리에 매달린 전구, 심지어 ‘발 냄새’처럼 그 실체가 보이지 않는 것까지 몸으로 표현하는 서남용은 방송사 공채 개그맨이 아니다. 위성채널인 KBS코리아에서 방송하는 <한반도 유머 총집합>에 출연해 자신의 특기를 선보인 것이 계기가 되어 <폭소클럽>에서 고정 꼭지를 맡게 된 것. 제작팀이 전업 개그맨 뺨치는 그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았던 것이다.

<폭소클럽>에서 또 다른 꼭지를 맡고 있는 장하나도 본업이 따로 있는 아마추어 코미디언이다. 장하나는 일산의 한 보습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평범한 과학강사. 지난 2001년 인터넷 방송을 통해 그의 독특한 수업 방식을 접한 SBS <진실게임> 제작팀이 출연 요청을 했고, ‘누가 가짜 강사일까’를 알아맞혀야 하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장하나를 ‘가짜’로 지목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선생님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엽기적”이라는 게 이유였다. “고등학교에서 단짝친구들이 생리기간까지 똑같아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거, 이유 있습니다! 바로 종족 번식과 관련된 우리 몸의 신비 때문이지요. 너 임신할 수 있어 나도 임신할 수 있어!” 남들보다 한 옥타브는 높음직한 목소리와 특이한 말투, ‘춤추는 과학강사’라는 별명에 걸 맞는 화려한 동작으로 이루어진 장하나의 강의는 매번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어놓는다.

국내 최초의 본격 스탠드 업(Stand Up) 코미디를 표방한 <폭소클럽>에서는 서남용이나 장하나 같은 아마추어 코미디언들이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다. <폭소클럽>은 KBS2 <개그 콘서트>를 담당하고 있는 강영원 CP(책임프로듀서)가 “시청자들의 요구가 다양해진 만큼, 색다른 형식의 코미디를 실험해보자”는 취지로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국내 방송가에서는 적극적으로 시도하지 않았던 스탠드 업 코미디를 한번 해보기로 했지만, 시작이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미국이나 유럽에는 크고 작은 클럽에서 남다른 재치와 입담으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스탠드 업 코미디언들이 셀 수 없이 많고, 이러한 코미디를 즐기는 문화도 형성돼 있다. 그러나 그동안 국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이따금 선보였던 스탠딩 코미디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응은 그다지 높지가 않았다. 게다가 객석과 시청자들을 단박에 사로잡을 10~12명의 재담꾼들을 어디서 찾아낼 것인가.

“첫 방송 때, 8명의 전문 코미디언과 4명의 일반인을 출연시켰거든요. 그런데 객석의 썰렁한 반응에 무너진 코미디언들이 꽤 있었어요. 혼자 하는 거니까 남 탓을 할 수도 없고, 준비한 게 안 먹히면 다른 걸 해야 하는데 주눅이 들어서 생각도 잘 안 나는 거죠.” 강영원 CP는 한번 출연한 뒤 ‘나 홀로 무대’가 버거워 출연을 포기한 이들이 몇 있었다고 귀띔했다. <폭소클럽> 무대에서의 실패가 다른 프로그램 출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정치적 부담’ 때문에 내로라하는 코미디언이 출연을 고사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반면 아마추어 코미디언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열렬했다. 애초 2~3주에 한번씩 출연하기로 했던 과학강사 장하나는 반응이 좋아 고정 출연자가 된 경우. 야구장 장내 아나운서로 활동하면서 대학가 축제를 누비던 김재동은 “온 국민이 사회자가 되는 그날까지!”라는 모토로 대중 앞에서 말 잘하는 법, 인터뷰 하는 법, 각종 이벤트에서 사회를 잘 보는 법 등을 재치있게 설명해 인기를 모았고, 신세대 마술사 이은결은 마술과 코미디를 접목시킨 ‘마법 개그’를 선보여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중 앞에서 말을 하고, 그들과 호흡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라는 것. 제작팀은 그동안 다양한 출연자들과 더불어 실험을 하면서, 스탠드 업 코미디를 하는 데 필요한 재능이나 훈련법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연장의 문턱을 낮추고, 무대를 활짝 열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강영원 CP가 “매주 금요일 오후 3시에 KBS 코미디언실에서 열리는 <폭소클럽> 오디션에 일반인들은 물론 타 방송사에서 활동 중인 코미디언들까지, 스탠드 업 코미디에 도전하고 싶은 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폭소클럽>을 보고 있으면,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주변사람들의 배꼽을 잡게 만들었던 옛 친구가 생각난다. 점심 식사를 하면서, 혹은 오랜만에 함께한 회식자리에서 동료들을 즐겁게 해주는 직장 동료도 떠오른다. 일주일 동안 쌓인 피로로 약간은 지치고 노곤한 금요일 밤, 일상을 소재로 웃음을 선사하는 동료나 친구들이 들려주는 기막힌 이야기에 한바탕 폭소를 터뜨리는 것, <폭소클럽>의 매력은 바로 거기 있다. 이미경/ <스카이라이프> 기자 friend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