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비디오 > 비디오 카페
2002년,올해의 장면
2003-01-06

친애하는 Y와 <글렌게리 글렌 로즈>를 다시 보고 한동안 넋을 잃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지상명령인 ‘팔자!’는 주술처럼 그들을 총없는 전쟁터로 몰아대고 누구도 거짓과 고립과 소외의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 <글렌게리 글렌 로즈>의 부동산 세일즈맨들은 그들의 현실인 사무실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이 영화는 자본주의 사무실의 아이콘을 보여준다. 대다수 사람들의 현실이 그곳에 있다.

Y와 커피를 마시며 ‘올해의 장면’을 꼽아보기로 했다. Y는 주저없이 <죽어도 좋아>의 섹스신을, 나는 <오아시스>의 한공주(문소리)의 환상장면을 꼽았다. 굳이 개봉작을 대상으로 하지도 않았고 비디오든 TV프로그램이든 뉴스의 한컷이든 기억에 남는 장면을 이야기하려 했는데, 우연이랄까…. 두 장면 다 올해에 개봉한 영화 속에 들어 있었다. Y는 <죽어도 좋아>의 섹스신을 꼽은 이유를 “너무 직접적이고 생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너무하네~ 너무해….” 이보다 더 마음 편하게 본 섹스신은 없었으며 그 순간 영화관의 스크린이 사라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나 역시 동일한 느낌을 받았으나 좀더 개인적인 이유로 나는 문소리의 환상장면을 꼽는다. 한공주는 생전의 나의 누이와 너무 닮아 있었다. 내가 스크린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던 장면은 문소리가 방 안에서 보는 빛의 환상보다도 지하철역에서 설경구 주변을 아무런 장애없이 뛰어다니며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특별히 그 장면에서 그녀의 연기가 다른 장면보다 더 좋았다고 할 수는 없다. 단지 나는 그 소망을 누나를 통해 알고 있었고 그것을 스크린에서 보았을 뿐이다. 타인의 생생한 현실과 강렬한 소원성취의 환상은 같은 효과를 낳는다. 이미지가 스크린을 절멸시키는 그런 순간을, 타자의 강렬한 소망이 자아의 스크린을 넘는 그런 순간을 2003년에도 기대해본다. 이지윤/ 비디오칼럼니스트 emptyba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