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쿠리 마우스>는 딱히 어떤 장르라고 말하기 곤란한 묘한 게임이다. 플레이스테이션2 게임이지만 이 게임에는 USB 마우스가 필요하다. 시작하면 평범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적당히 이동하면 이벤트가 벌어진다. 대단한 건 아니고 벽 가득히 그림을 그리면 된다. 마우스가 붓 대신이다. 제작사쪽에 의하면 이 게임은 ‘라이브 그림 그리기 게임’이란다. 포토숍이나 일러스트레이터, 하다 못해 윈도 그림판까지 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재미일까 하지만 이 붓은 마법의 붓이다. 이걸로 그림을 그리면 놀라운 일이 생긴다. 바닥에 선을 하나 그어보자. 갑자기 나무가 자라난다. 지나가는 구름을 슬쩍 건드리자 이번에는 비가 쏟아진다. 나무가 비를 쫄딱 다 맞는 게 왠지 불쌍해 보인다. 다시 마법의 붓으로 쓱싹쓱싹, 이번에는 우산이 펼쳐지며 비를 막아준다. 하늘에 동그라미를 그리자 햇살이 쏟아진다. 바닥에 구불구불한 선을 그리면 화창한 오후에 자동차가 신나게 달려간다.
이게 게임의 전부다. 주어진 퀘스트대로 그려내야 클리어에 성공,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게 아니고 누가누가 잘 그렸나 경쟁할 필요도 없다. 성취도가 퍼센트로 표시돼 100%를 채우려고 머리를 짜낼 일이 없고, 하이 스코어를 경신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일이 없다. 아무렇게나 그어놓은 선에서 튀어나오는 것들을 바라본다. 놀라고 감탄하고 즐거워한다. 벽을, 하늘을, 세상을 장식하는 선과 면과 색채를 보면서 행복해한다. 이 게임을 만든 건 비디오 아티스트 이와이 도시오, 그리고 애니메이션이나 캐릭터디자인으로 유명한 2인조 작가 우루마 데루비다. 이와이 도시오는 비디오 아티스트로서의 경력 외에도 이미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게임 <심튠>을 만든 경험이 있고, 우루마 데루비 역시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만들어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빗쿠리 마우스>를 만든다기에 엄청나게 기대했었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다. 하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시작하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한다. 그리고 간신히 시스템을 파악하면 한번 더 당황한다. 이게 다야 고작 찍찍 선을 그어대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는 게 다라구 불편하다. 이렇게 저렇게 시키는 대로 따라하며 점수를 따고 정해진 엔딩으로 치닫는 게임이 좋다. 상상하는 것은 싫다. 귀찮다. 조금이라도 낯선 건 무조건 배척한다. 마법사 주제에 ‘라이트닝 볼트’를 쓰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반지의 제왕>은 시시하다. <스타크래프트>보다 유닛 크기가 작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은 다 엉터리다.
하지만 ‘악의 근원’은 ‘고민없이 만든 게임들과 그것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다. 게임기를 부수고 게임을 내다버려도 상상할 시간도, 능력도, 의지도 여전히 없다. 다들 똑같은 것만 상상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살기 불편하다. 다들 싫어한다. 매일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이 반응하지 않으면 미움받는다.
100년 전에는 아름다운 것은 손을 써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만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저나 다름없는 비용으로 바래지 않는 색채와 풍부한 소리와 역동적인 움직임을 즐길 수 있다. 그렇지만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은 여전히 부족하다. <빗쿠리 마우스>는 오사카의 게임 소프트 가게에 산처럼 쌓여 680엔에 팔리고 있었다. 나온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값이 십분의 일로 떨어졌다. 국내 정식 발매 가능성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개인 수입품 형태로라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