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워드피쉬>는 할리 베리의 벗은 가슴이 어떤 액션보다도 강렬한 영화였다. 열심히 설득하면 얻어낼 수 있는 배우의 맨몸이 값비싼 컴퓨터그래픽이나 위험한 스턴트를 능가할 수 있다면, 그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때문인지 2002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이나 조연상 후보로 오른 여배우 중 니콜 키드먼과 할리 베리, 케이트 윈슬럿 등 다섯명이 한번이나 그 이상 영화 속에서 나체를 보였을 정도. <피플>은 최근 이러한 배우들의 다양한 노출 형태를 분석하면서 그 장점과 단점, 노출이 빈번해지는 이유 등을 제시했다.
배우들 스스로 말하는 노출의 동기는 “작품을 위해서라면”이라는 고전적인 대답이다. <언페이스풀>에서 과감한 정사장면을 연기했던 다이앤 레인은 “그것(섹스) 없이 어떻게 불륜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어요 고기가 빠진 햄버거는 먹을 게 못 되는 거나 마찬가지죠”라고 자신을 변호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좀더 냉정하게 상황을 평가했다. <레드 드래곤> <몬스터 볼> <언페이스풀> 등이 박스오피스에서 나름대로 양호한 성적을 거둔 데는 배우들의 노출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으며, 그런 노출은 특히 젊은 배우들의 경우 경력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뉴욕 데일리 뉴스>의 영화평론가이자 <완전노출: 영화팬들을 위한 누드 가이드>의 저자인 제이미 베르나르는 “젊은 여배우들은 노출을 영화판에 뛰어들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샤론 스톤은 <원초적 본능>에서 유명한 심문장면을 찍은 뒤 마틴 스코시즈의 <카지노>에 출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나이 먹어가는 여배우들은 노출을 여전히 건재한 육체를 확인시키는 계기로 삼는다. 베르나르는 “육체를 드러내지 않는다면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같은 영화만 들어올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물론 출연료도 함께 올라가지만, 셀마 블레어처럼 후회만 안게 될 수도 있다. 저예산영화 <스토리텔링>에서 섹스신을 연기한 그녀는 “어떻게 엄마를 극장으로 데려가나 모르겠더라고요”라는 말로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여배우들의 노출이 관객동원에 힘을 실어주는 반면, 남자배우들의 전신노출은 여전한 금기다. 조지 클루니가 <솔라리스>에서 벗은 뒷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남자의 누드는 남성 관객에게 부담을 준다는 것이 할리우드의 정설. 그러나 이완 맥그리거는 “누구도 막 섹스를 마친 상태에서 옷을 입고 있지는 않는다”면서 용감하게 <벨벳 골드마인>을 찍었다. 여기에 비하면 줄리아 로버츠나 사라 미셸 겔러, 사라 제시카 파커처럼 노출불가를 고집하는 배우들은 속이 좁아 보이기도 한다. 로버츠는 “옷을 입으면 연기지만, 옷을 벗으면 다큐멘터리가 된다. 나는 다큐멘터리를 찍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고집을 설명했다. 노출을 꺼리는 여배우들이 취하는 수단은 대역배우나 촬영을 방해하는 자기 테이프 등 다양하다. 출연계약서에 노출부위와 횟수 등을 까다롭게 기재하는 것은 촬영을 시작하기 전 거쳐야 하는 기본 코스. 이 때문에 종종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 벗은 몸을 드러내야 한다는 건 아무리 아름답거나 거침없는 배우라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놀랄 만큼 섹시해졌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수줍음이라고는 모르는 것처럼 행동해왔던 크리스티나 리치마저 “정말 초조했다”고 첫 번째 정사신을 찍은 소감을 밝혔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가 관객을 경악시킨 이래 30년이 흘렀지만, 노출은 아직도 터부와 매혹을 넘나드는 뜨거운 이슈로 남아 있다.김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