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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아십니까,<멘탈 게임>
2002-12-18

컴퓨터 게임

긴장과 이완, 삶은 이 둘의 반복이다. 긴장 긴장 긴장이면 너무 힘든 하루고, 이완 이완 이완이면 너무 무기력한 날이다. 적당히 살다보면 긴장 이완 긴장 이완이라면 좋겠다. 하지만 의사도, 판사도, 대기업 직원도 고등학교 선생도, 자기 직업은 일한 것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없는 대가가 주어지는 일이라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일이 곧 보람인 극소수의 행복한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한 뒤에는 놀아야 한다. 일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놀면서 풀어야 한다.

1인칭 슈팅 게임을 해볼까. 해치워도 해치워도 몰려드는 몬스터들, 어느새 머신건 총구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은 어떨까, 한순간 주춤해 테크 트리를 제때 쌓아올리지 못하면 판세를 영원히 뒤집을 수 없다. 멀티플레이라도 하고 있었다면 팀원들에게 먹는 욕에 배가 부르다 못해 터질 지경이다. 느린 게임, 쉬엄쉬엄 하는 게임은 인기가 없다. 빠른 손놀림과 극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게임들뿐이다. 일하느라 인간관계에 치인 몸을 편하게 하려면 게임을 할 게 아니라 도를 닦아야 할 것이다.

<멘탈 게임>은 이른바 ‘기능성 게임’이다. 도인의 경지와는 거리가 먼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주목할 만하다. 조그마한 수신기를 컴퓨터에 연결하고 거짓말 탐지기처럼 생긴 센서가 달린 선을 꼽는다. 센서를 손가락에 붙이고 전원을 넣으면 스트레스가 빨간 눈금으로 표시된다. 마음을 가라앉혀본다. 빨간 눈금이 하나씩 사라지고 주황, 노랑, 녹색 눈금이 차례로 드러난다. 간단할 것 같지만 의외로 쉽지 않다. 속세의 경쟁심과 승부욕을 떼어놓고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 빨리, 더 확실하게 빨간색 눈금을 떨어뜨리려고 열을 내는 순간 지금까지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눈금은 다시 시뻘겋게 빛난다.

어느 정도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면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한다. 화면에 공이 하나 떠 있다. 이 공은 번뇌의 공이다. 높이 떠 있는 것은 스트레스가 머리꼭대기까지 치솟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눈을 감는다.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다시 내쉰다. 다리를 뻗고 어깨를 늘어뜨린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공도 서서히 내려온다. 공을 다 내리는 데 성공했다면 이제 만다라를 돌려보자.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만다라에만 집중한다. 그러다보면 서서히 만다라들이 돌기 시작한다. 만다라들이 전부 돌아가고 있다면 청정한 마음으로 만다라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게임은 독일에서 만들어졌다. ‘젠’이란 게 서양에서는 트렌디하게 여겨지는 반면, 정작 본산인 우리나라에서는 지하철역에서 소매를 잡아끄는 칙칙한 아저씨의 이미지라는 게 묘하다. 혼란스러운 건, 도란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 자신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인데, <멘탈 게임>은 센서를 붙이고 첨단 기술을 이용해 경지에 다다르려고 한다는 것이다. 젠 스타일 흑백의 유아복을 입은 아이와 커플룩을 보여주는 멋쟁이 여피 엄마가 역시 검고 흰 직선적 인테리어의 식당에 가 서툰 젓가락질로 스시를 먹고, 슈퍼모델이 디자인한 요가복을 입고 요가를 한다(조깅화는 내다버렸다). 약간의 우연 혹은 마케팅이 뒤따른다면 <멘탈 게임>은 보그지를 매달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최고로 쿨한 여가선용으로 꼽히게 될지 모른다. 잘하고 있는 건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확인하느라 오히려 마음이 산란해지는 게 보통 사람이다. 자신의 수행도를 비주얼로 표현해주는 게임에 환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쑥과 마늘만 먹으며 100일 동안 햇볕을 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세상, 나로서도 <멘탈 게임>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