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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말레나>
2002-12-18

여신의 향기,별처럼 꿈처럼

Malena, 2000년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출연 모니카 벨루치KBS1 12월22일(일) 밤 11시20분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순수한 동경(憧憬)의 영화를 만든다.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피아니스트의 전설>(1998)도 비슷하다. 평생을 유럽과 미국 사이를 오가는 거대한 배 안에서 생활해온 사람이 있다. 그는 피아니스트다. 어느 날 이 피아니스트는 갑판에서 서성대는 여인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녀를 위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일생을 건 모험을 계획하게 된다. 이처럼 토르나토레의 영화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순간이 있다. 타인에겐 허황된 이야기처럼 비칠지 모르지만 누구나 내심 간직하고 있는, 개인적인 꿈이나 판타지의 세계를 두드린다. <말레나>는 토르나토레의 2000년작이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 한 마을에 말레나라는 여성이 산다. 그녀가 걸어갈 때면 마을 사람들은 숨을 죽인다. 남자들은 말레나의 아름다움에 도취해서, 여자들은 서로 쑥덕거리느라 정신이 없다. 레나토라는 소년 역시 말레나를 숭배하고 있다. 남편의 전사소식이 전해지자 말레나는 욕망과 질투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여러 남자들은 말레나를 차지하기 위해 소동을 벌이고 말레나는 힘없이 세파에 밀려다니는 신세가 된다.

<말레나>는 레나토라는 소년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어린 소년은 말레나에게 반해 남몰래 연정을 품고 있다. 그녀가 나타나면 자연스럽게 눈길이 향하고 뒤를 밟게 되는 것이다. 레나토는 말레나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가 그녀를 훔쳐본다. 심지어는 그녀가 듣는 음악을 나눠 듣고 싶어 똑같은 음악을 찾아 헤맨다. 일종의 관음이라 볼 여지도 있다. 토르나토레 감독은 말레나를 연기한 모니카 벨루치를 스크린의 여신처럼 그려낸다. 그녀가 등장하면 동네 사람들이 감탄사를 내뱉게 되는 것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당연하다. 걸음걸이, 손동작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남자들을 사로잡는다. <말레나>에서 레나토의 여성을 향한 연정은 상상의 세계로 이어진다. 소년은 상상 속에서 여성과 커플이 되고 사랑을 나누며 위기에 직면하면 탈출한다. <말레나>는 페데리코 펠리니 등의 이탈리아영화의 전통, 즉 유년기의 아스라한 동경을 영화에 재현하는 것을 솜씨좋게 계승한다.

토르나토레 감독은 예술에 관한 영화를 즐겨 만든다. <스타메이커>와 <시네마천국>은 영화에 관한 것이었으며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음악영화다. <말레나>는 얼핏 어느 소년의 짝사랑의 기록처럼 보이지만 영화 속 말레나는 ‘스타=여배우’의 비유로도 읽힌다. 레나토가 말레나와 사랑하게 되는 상상의 순간이, <역마차>를 비롯한 고전영화의 패러디임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영화에서 레나토는 말레나와 대화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의 말대로 말레나는 언제나 “그의 가슴에 남아 있는”하늘의 별(Star) 같은 존재일 뿐이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