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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은, 돌아오지 않을 낭만을 위하여, <타이타닉>
2002-12-13

내인생의 영화

그 당시 내게 문제가 될 것은 전혀 없었다. 뭐, ‘전혀’라는 단어가 갖는 임팩트 때문에 다소 과장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방식대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그건 책과 영화를 끊고 가능한 한 음악을 듣지 않기로 작정을 한 뒤 얻은 쾌거였다. 그 당시 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쉽게 놀라거나 분노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 경지에 오르면 주변 상황은 믿기 힘들 정도로 빨리 변화하고, 내 곁엔 소수의 사람들과 다수의 소주병만이 남는다. 그때 내 주변에 남아 있던 소수의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나와 흡사하거나 비슷한 상태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난 그들과 함께 술과 술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도발적인 제안을 해왔다.

“네가 한달에 소주 100병을 먹을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나의 주량은 소주 두병 반 정도였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제안이었다. 딱히 뭘 정해놓고 한다는 것이 귀찮았지만, 약간의 객기도 발동하고 술 마시는 것 외에 마땅히 할 일도 없었던 터라 친구의 ‘미션 임파서블성’ 제안을 수락하게 되었다. 물론 계획은 치밀했다. 계산상으로는 얼추 하루에 세병씩만 먹으면 될 듯하지만 사람의 일이라는 건 알 수 없는 것이므로, 만약을 위해 하루에 다섯병씩 먹어두기로 했다. 주량의 문제는 아침 일찍부터 먹고, 취하면 자고 다시 일어나 먹는 오뚝이 정신을 벤치마킹하는 것으로 해결하기로 했다(지금 돌이켜봐도 내 인생에서 그때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한 적은 없는 듯하다). 철저한 감시 속에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달려온 20여일. 주도면밀한 계획 덕에 며칠의 여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00병에서 단 한병 모자라는 술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한병은 보길도에서 마시자.”

처음 ‘미션 임파서블’을 지령했던 친구가 그간의 지난한 노력을 치하하며 낭만적인 파이널을 제안했고, 난 망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해남으로 향했다. 해남에 도착해 다시 보길도로 향하는 배 위에서, 대개의 치기어린 청춘들이 그렇듯 보길도에 간 건 분명 바다 때문이었을 텐데, 몽롱한 머리 속은 온통 하늘 생각뿐이었다. 갑판 위에 누웠었는지…. 자세한 건 기억나지 않지만 기념비적인 마지막 소주 한병을 마시면서 바라봤던 건, 분명 바다가 아니라 파란 하늘이었다.

세월은 무상해 그런 낭만적 백수 시절은 봄날처럼 가고, 기자를 빙자한 양아치 짓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게 되었다. 이제는 친한 홍보사 직원이 간청하면 시사회장에 가서 영화를 볼 만큼의 융통성을 갖게 되었고,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며 타협할 줄 아는 ‘성인’이 되어 있었다. 구르는 돌마냥 둥글둥글 살아가다 불현듯, 생채기처럼 잊혀졌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 것은 바로 영화 <타이타닉>이었다.

“I’m flying.”

자신이 세상의 왕임을 공표했던 감독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잘생긴 배우 디카프리오와 예쁜 배우 윈슬럿이 멋진 배 위에서 날고 있는 장면은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그때 난 어처구니없게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는데, 코미티 프로에 단골 패러디 메뉴로 등장하던 장면을 보면서 그 시절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어쩌면 보길도로 가는 배 위에서 멋들어진 포즈 한번 취해보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고, 아니면 타이타닉에서의 운명적 사랑에 대한 질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난 왜 그렇게 자학하듯 술을 마셨는지, 무엇 때문에 폼나게 날아보지 못했는지…. 보길도로 향하는 배 위에서 소주를 들이켜며 울고 있었다는 것은, 그때 처음 안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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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류근모/ 남성지 <MAXIM>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