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영화는 게임을, 게임은 영화를 곁눈질하며 상대의 자리를 탐내왔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처럼 게임에 대한 통찰도 애정도 없이 겉모습만 성의없이 베끼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아발론>처럼 게임 논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는 영화가 있다. <툼레이더>는 게임 캐릭터와 배경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만으로도 블록버스터가 되었고, <레지던트 이블>은 게임 문법을 응용해 새로운 느낌의 영화를 만들었다. 게임쪽으로 말하자면, <윙커맨더>처럼 게임보다는 동영상쪽에 더 치중한 듯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는 영화 같은 극적인 연출로 명성을 얻었다.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시대다. 블록버스터영화나 만화는 으레 게임으로 나온다. 게임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이 영화보다 먼저 선을 보였다. 땅 위의 엘프 군주들에게는 세개의 반지, 돌집의 드워프 왕들에겐 일곱개의 반지, 죽을 운명을 타고난 인간들에게는 아홉개의 반지가 주어지지만 암흑의 군주는 절대반지를 차지한다. 사우론은 다른 모든 반지를 지배하는 절대반지를 끼고 중간계 전체를 지배하려고 한다. 게임은 인간과 엘프의 연합군이 사우론의 대군대와 맞서는 영화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미 영화에서 봤지만 다시 한번 감탄하고 있는데 화면 이쪽에서 저쪽까지 폭풍처럼 칼들이 부딪히고, 영화는 게임으로 바뀐다. 난데없이 전장 한복판에 떨어져 있다. 이제부터 시작한다는 말도 없이 몬스터들이 달려든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조건 해치워야 한다.
영화 <반지의 제왕>은 보기 드문 완성도를 보여주는 뛰어난 영화다. 하지만 소설 <반지의 제왕>이 없었다면 재미도, 감동도 반감되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보며 상상했던 것들이 스크린 속에서 실현되었다. 그야말로 판타지가 이루어진 것이다. 게임 <반지의 제왕>은 영화가 실현시킨 꿈에 날개를 단다. 원작이 있는 게임들이 대개 유명세에 무임승차하려 했던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는 그때의 두근거림이 아직 남아 있다. 게임은 이를 다시 일깨운다. 그리고 교묘하게 게임으로 이어간다. 타격감의 부족이라는 액션 게임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이 성공한 건 그 때문이다.
게임과 영화의 융합의 열쇠가 되는 건 역시 컴퓨터그래픽이다.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게임 화면이 실사와 구별하지 못할 정도의 수준으로 가고 있다. 영화로 말하자면, 기술 발전 덕분에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영화 속에서 천연덕스럽게 구현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영화와 게임이 만날 수 있는 다리가 놓아진 것이다. 하지만 <파이널 판타지 더 무비>의 실패에서 배웠듯이, 컴퓨터그래픽은 영화와 게임의 행복한 만남의 필요조건이 될 수 있더라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은 영화에서 게임으로 너무나 극적인 동시에 자연스러운 전환을 보여준다. 영화를 다시 보는 기분에 취해 있는데 느닷없이 게임세계로 끌려들어가지만 어색하거나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영화의 감동을 불러오고 이에 힘입어 그 속으로 들어가 그 세계의 일원이 된다.
이실두르는 사우론의 손가락을 자르고 반지를 빼앗았다. 하지만 이실두르 역시 죽고, 떠돌던 절대반지는 골룸과 빌보를 거쳐 프로도의 손으로 들어온다. 게이머가 맡을 역할은 아라곤, 레골라스, 김리 중 하나다. 프로도와 샘은 실종되었고, 피핀과 메리는 오크들에게 잡혀갔다. 반지원정대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게임을 클리어한다면 영화의 감동은 더욱 커질 것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