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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킹 라이프
2002-12-12

Waking Life, 2001년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장르 애니메이션 (폭스)

<웨이킹 라이프>는 ‘영화는 신성하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인물과 사건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대화가 이루어지다가, 어느 순간 대화는 음악이 된다. <비포 선라이즈>에도 대화가 많다. 여행 도중에 만난 남과 여는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하룻밤을 보내고 헤어진다. 생의 도중에 인간은 수없이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웨이킹 라이프>의 남자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 세상과 인생,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는다. 때로는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허공이나 옆자리에서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과연 이것이 현실일까 그는 꿈속에서 그들을 만난 것일까 아니 호접몽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자체가 꿈인 것일까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만남과 대화, 그리고 세계와 인간에 대해 무한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웨이킹 라이프>는 말의 향연이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는다. 포스트 모더니즘을 비판하기도 하고, 영적인 경험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새로운 진화의 시대가 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자신의 삶이 어떤 늙은 여인의 과거의 기억 같다는 여인도 있고, 존재 자체에 대한 긍정이 필요하다는 남자도 있다. 행동의 방식과 삶의 동력도 여러 가지다. 난잡한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하여 분신을 하는가 하면, 세상에 저항하자면서 자동차의 스피커로 선동하는 남자가 있고, 감옥에서 복수의 일념으로 저주를 퍼붓기도 하고, 총으로 서로를 쏴죽이는 남자들도 있다.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그는 알지 못한다. 거리에서 만난 한 남자는 ‘아직도 너 자신을 찾지 못했는가’라고 물어본다. 그는 아직도 찾지 못했다. 자신이 깨어 있는지, 꿈속인지도 알지 못한다. 어쩌면 인간의 ‘가장 큰 실수는 우리가 깨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고, ‘가장 위대한 것은 찰나와 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이 진실이고, 진리인지는 결코 알 수가 없다. 결국 우리는 끊임없이 찾아헤매는 것이다. ‘누구나 꿈을 꾸지만 결국 깨어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깰 수 있다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

뉴욕영화비평가협회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과 실험영화상을 받은 <웨이킹 라이프>는 카메라로 실제 배우와 풍경을 촬영하고, 거기에 색을 입히는 로토스코핑 기법을 사용한 애니메이션이다. 인물과 풍경을 표현하는 방식은 <웨이킹 라이프> 안에서도 쉴새없이 바뀐다. 현실과 꿈의 부유하는 이미지를 몽환적으로 담아내면서, 철학적인 질문에도 과감하다. <웨이킹 라이프>는 무수한 철학적인 말 때문에 어지럽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말들이 아름다운 음악, 신성한 울림으로 다가온다.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