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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효과
2002-12-11

정태인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황수관 박사가 ‘신바람 건강법’으로 인기를 끌었을 때, 나는 한번도 그 유명한 강의를 들은 적이 없으면서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신바람이라…. 이거 쓸 만한 말이다. 세계 역사상 놀랄 만한 경제성장률을 보였던 경우 국민들이 신바람나게 일하지 않았을까

첫 번째 예.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했을 때 러시아는 유럽의 최후진국이었다. 그런 나라가 어떻게 불과 40년 만에 세계 최초의 유인 우주선을 쏘아올릴 수 있었을까 그래서 미국을 발칵 뒤집어놓을 수 있었을까

영화 <빨갱이들>(reds)이 사실이라면 신생 소비에트공화국은 미국의 생산라인을 그대로 옮겨놓았고 기술자들도 대거 몰려왔다. 일반 노동자들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다는 희망을 가지고 정말로 열과 성을 다해 일했다면 생산성은 미국보다 더 높았을 것이다. 이건 사회주의 초기의 나라들이 다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은 분명히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두 번째 예. 이번엔 미국이다. 테민논쟁에 따르면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을 하나하나 놓고보면 별로 이룬 것이 없다.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교과서인가에도 나온 테네시계곡의 댐 건설사업이나 농업정책도 계량경제학으로 꼼꼼히 따져보니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뉴딜이 미국을 바꿔놓았다는 건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별것이 없었어도 사람들에게 ‘아… 이제 세상이 바뀌는구나’ 하는 희망을 심어주었기 때문에 실제로 세상이 바뀌었다는 얘기다. 경제학 용어를 사용한다면 ‘장기적 기대’를 바꿔놓았다고나 할까

셋째는 우리 얘기다. 나는 새마을운동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역사학 논문을 읽으면 한편으로는 수긍하면서도 ‘이것만은 아닌데…’ 하는 마음을 갖는다. 당시에 사람들을 움직였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분명히 ‘잘살아보세’는 국민들을 움직였다.

30년 전, 어렸을 때 얘기야 확신이 없지만 요즘의 비슷한 예로는 ‘금 모으기 운동’이 있다. 우리의 냉정한 경제학자들은 이 운동이 비합리의 전형이라고 비판하고, 똑똑한 좌파들은 여기에서도 국가주의의 냄새를 맡지만, 나는 국민들이 ‘나라를 살리자’라는 마음으로 하나가 됐던 것이 위기극복의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

합리의 관점에서 보면 ‘미친 짓’일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움직이면 엄청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나는 이것을 ‘동원’이라는, 다소 냉랭한 개념으로 설명하려 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희망효과’라고 부르려 한다.

그렇게 강고해 보이던 구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희망, 재산은 물론이고 학력까지 세습하면서 국민의 의무를 회피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물먹일 수 있다는 희망, 이제 내가 노력만 하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는 희망… 이런 희망이 세상을 움직인다.

과거 박정희의 동원이 위로부터의 강제동원이었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민주적 동원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이 가져올 성과는 일반적인 경제학으로는 예측할 수도, 또 측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희망은 잠재성장률을 몇 퍼센트 끌어올릴 수도 있다. 원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잠재성장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노동의 양을 늘리고 질을 높이거나 자본의 양과 질을 증대시켜야 한다. 결국은 교육과 기술이 관건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잠재성장률을 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대통령만 잘 뽑으면 다시 한번 고성장시대를 누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정태인/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