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나의 새 앨범 <Shaman>은 익숙함이라는 안전한 노선을 택함으로써, 또 다른 신화를 창조하기보다는, 아성의 잔영 속에 머물기를 선택한 작품이다. 물론 그 배경은 그래미 어워드 최다 부문 수상 기록과 1천만장을 훌쩍 뛰어넘은 판매고로 ‘노장 신화’를 이룩했던 전작 <Supernatural>(1999)의 거대한 그늘이다.
<Supernatural>과 <Shaman>은 외형과 실재가 모두 흡사하다. 솔직히, 닮아도 너무 닮았다는 인상이다. ‘초자연적 존재’에서 ‘샤머니즘의 무당’으로 이어지는 앨범 타이틀부터가 전작의 연장선상에 매달려 있고 남미의 토속적이고 강렬한 원색 대비 페인팅으로 장식된 앨범 커버는 물론, 당대의 ‘잘 나가는’ 젊은 뮤지션들과의 협연으로 이루어진 수록곡들의 성격조차도 그렇다. 3년 전, 극적으로 재기한 노장의 저력에 갈채를 보냈던 이들을 당황스럽게 하기 충분한 노골적 자기복제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보태 피니시 블로를 날리는 것이 바로 신작의 첫 싱글로 공개된 <The Game Of Love>의 비디오클립이다.
<The Game Of Love>는 산타나가 (2002년의 트렌드라고 할) ‘10대 여성 싱어-송라이터’군(群)의 선두주자인 미셸 브랜치와 협연하고 있는 곡이다. 귀를 간질이는 예쁜 멜로디가 산타나 특유의 라틴 리듬과 어우러지는 상쾌한 분위기가 첫 싱글로 안성맞춤이라기에 모자람이 없다. 다만, 이 곡의 뮤직비디오가 전작의 히트곡인 <Smooth>의 그것과 너무도 닮았다는 것이 문제다.
주지하다시피, <Smooth>는 매치박스 20의 롭 토머스가 참여한 곡으로, 앨범 <Supernatural>의 첫 싱글로 공개되어 말 그대로 ‘슈퍼내추럴 산타나 신드롬’을 축조해낸 견인차였다. 생기 넘치는 라틴 리듬과 대중적 취향의 록 사운드가 결합된 곡으로, 그 비디오클립은 일상의 길거리가 무대가 되고 그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이 관객이 되어 흥겨운 즉석 공연을 벌인다는 기본 구성 위에 산타나 밴드와 롭 토머스가 분방하게 잼을 벌이는 장면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 <The Game Of Love>의 비디오는 롭 토머스의 자리에 미셸 브랜치를 캐스팅해 찍은 ‘<Smooth> 속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흡사한 구성과 편집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노장 카를로스 산타나는 파트너가 누구든 상관없다는 듯 언제나처럼 기타 연주에만 심취해 있는 모습이고, 미셸 브랜치는(롭 토머스가 그랬던 것처럼) 신선놀음에 겨운 주인을 대신하여 관객을 대접하는 호스트 역할을 기꺼이 떠맡고 있다.
결국 <The Game Of Love>의 클립은 뮤직비디오가, 창조적인 프로세스에 적용되기도 전에, 마케팅 전략의 부속 전술로 전락한 결과를 보여주는 구체적 표본이 되고 말았다. 애초에 신작 <Shaman>에 부여된 임무는 그저 전작의 성공을 이어나가는 것뿐이었고, 전작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산타나의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게스트로 참여한 뮤지션들의 스타성에 초점을 맞춘 두 앨범의 외형적 공통점이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다. 전작 <Supernatural>의 주객전도형 프로젝트가 노장의 재기작에 대한 묵시적인 전제라는 그만의 ‘특별한2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공의 확대재생산 혹은 자기 오마주 그 어떤 우아한 변명을 갖다 붙인다 해도 새 앨범 <Shaman>의 한계는 결코 극복될 수 없는 것이고, 그 같은 전략적 타협 속에서 희생되는 것은 결국 음악이다. 40년이라는 시간의 벽을 뛰어넘은 카를로스 산타나와 미셸 브랜치의 협연은 멋진 것이지만, 그들의 음악은 너무도 뻔한 포장 속에서 생기를 잃고 있다. 그리고 <The Game Of Love>의 뮤직비디오가 보여주고 있는 건 바로 그 ‘비즈니스 게임’의 생리인 것이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mymusic.co.kr 대표 bestles@mymusic.co.kr